어깨에 지워진 무게에 대해
"어떤 카메라를 쓰세요?"
DSLR로 사진을 찍거나, 전공생임을 밝힐 때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어떤 카메라가 좋나요? 추천해주세요!"
이럴 때면 언제나 자신에게 맞는 카메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장비를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대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 말일뿐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거나 기계에 제법 관심을 둔 사람도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 묻지만 그들의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카메라의 급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을 판단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면 "00이 더 좋지 않나요? 저는 00을 쓰는데"라는 묻지 않은 말이 돌아오기도 한다.
사진이란 분야는 화학적, 광학적 기술의 발달과 함께 성장했다. 빛을 받은 은염을 정착시키는 약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더 가벼운 롤필름이 없었다면, 더욱 복잡한 렌즈 구성이 없었다면. 사진의 영역은 지금처럼 넓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카메라의 기술적 발전은 곧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범위, 영역의 확장이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계속해서 한계선을 뛰어넘는 카메라와 렌즈, 장비가 출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즐기는 이들의 장비 욕심, 장비 자랑, 장비에 대한 고민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장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세는 물음표를 만든다.
초급자들이 사진의 카테고리에 들어오면 장비에 대한 왈가왈부가 먼저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장비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의견이 분분해지곤 한다. 여기서 특히 초급자들에게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는 선택지 두 개가 주어진다.
사진에 있어 장비가 중요하다 VS 장비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떤 의견에 손을 들어주는 편인가? 사진이 기술 발달의 영향을 크게 받으므로 장비가 중요하다는 입장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을 빗대도 충분하다.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고, 높은 감도에서도 묘사력이 좋은 카메라를 쓰는 것이 여러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반면 장비는 말 그대로 도구일 뿐 어떤 순간 셔터를 누르는 것도, 프레이밍을 하는 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몫이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비보다 중요한 것은 찍는 사람의 철학, 즉 인문학이다. 이렇게 양측 주장은 팽팽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론 그 어느 곳에도 절대적으로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두 전제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1. 특별한 장비가 필요할 때
제시한 5장의 사진은 소위 장비빨이 꼭 필요한 사진이다. 150-600mm가 필요한 항공사진이나 스포츠 사진을 24-70mm와 같은 표준 줌렌즈로 촬영하긴 어렵다. 캐논의 TS-E렌즈는 대형 카메라처럼 무브먼트가 가능한 렌즈로 초점면을 바꿔서 효과를 주고 싶거나, 왜곡 없는 파노라마 사진, 건축물의 왜곡을 제거하고 싶을 경우에 사용하는 특수 렌즈다. 포토샵과 같은 후보정 프로그램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층이 넓진 않지만 이 렌즈 역시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어 해당 사진에 관심 있다면 꼭 필요한 렌즈일 수 있다.
반면, 사진을 찍다 보면 갖고 있는 장비만으로 충분할 때가 더 많다.
2. 특별한 장비 없이도 가능할 때
가벼운 1박 2일 여행 도중 소지하고 있는 콤팩트 카메라로 툭툭 찍은 것들이다. 물론 이 모든 사진이 해외에서 찍었기 때문에 로케이션 빨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아래는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서울에서 일상을 촬영할 때는 소지가 편한 콤팩트 카메라를 선호한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생각보다 소소한 기능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없는 경우라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충분할 때가 많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가벼운 스냅사진을 일상적으로 즐기고, 나만의 프레임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가능한 것이다. 즉, 이러한 사진을 즐기는 내게 어깨를 짓누르는 DSLR 카메라와 장망원 렌즈, 초광각 렌즈는 필요 없는 것이다.
만약 위에 언급한 건축 사진, 스포츠, 항공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마땅히 그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가벼운 일상 사진이나 아이, 가족사진 등을 촬영하는 사람에게는 거금을 들여서 카메라 가방을 무겁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관심사를 서로 다르게 촬영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메라 가방이 너무나 가볍다고 무시하거나 부끄러워할 일도, 장비로 가득한 가방에 미련하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다. 어찌 됐건 각자의 방식대로 사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니까.
카메라 가방의 무게는 곧 나의 무게다. 내게 걸맞지 않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 고통이고, 너무 가벼워 도통 무게가 잡히지 않으면 그 또한 고통이다. 그러니 타인의 무게를 내 것으로 만드려고 하지도, 누군가에게 나의 무게를 진리인양 말할 이유도 없다. 지금 내 가방의 무게가 정말 적당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먼저이길, 내 사진의 부족함을 장비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권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