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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May 25. 2017

사진,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 사진에 대해 무엇이든 쓰고 싶었다. 그게 사진에 관한 매거진을 시작한 이유였다.

2. '사진 잘 찍는 방법', '멋진 풍경 사진 찍기' 이런 흔하디 흔한 주제로 사진을 풀어가고 싶진 않았다. 또 사진의 미학을 들먹이기엔 늘 공부가 부족했다. 어딘가 어정쩡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 딱 그 정도의 사진과 글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개인 사정이 복잡해지자 사진은 쌓여가는데 글에 대한, 테마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 한번 가볍게 내 마음대로 이러쿵저러쿵 사진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를 썼는데 편했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괜찮았고, 내용도 그럴싸해 보였다. 

4. 그러던 중 '아직도 나는 사진이 어렵다'는 주제로 '사진은 무엇이다'라고 또는 '이렇게 찍어야 사진이지'라고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은 이번엔 또 어떤 사진을 정리해, 어떤 주제를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더 이상 강요할 것이 없음을 알아챈 것이다.

5. 사실은 나에게 사진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반어법으로 멋있어 보이려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나는 가끔은 매일, 어쩔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내키면 한 달에 한번 카메라를 쥔다. 대단한 사진가들의 전기에는 매일, 자고 일어나는 순간에도 연습하기 위해 머리맡에 카메라를 둔다고 하던데. 게을러서 그게 잘 안된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다가 잊어버릴 때도 있고, 외장하드 용량 차는 것이 두려워 한동안 안 찍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은 인생의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사진이라는 단어 없이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사실 상상하기도 어렵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사실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기분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친구나 애인에게 보일 사진을 정리하고, 편집하고, 발송하고, 반응을 보는 과정에서 더욱 그렇다. 누군가에게 보일 것을 예상하며 사진을 고르고, 누군가가 멋지다 혹은 예쁘다고 반응하길 예상하며 사진에 화장을 한다. 또 그것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채널을 선택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한 적은 없다. 사회적 관습에 내몰린 적은 있어도. 그래서 내 사진도 나를 닮아 치창 하는 과정이 가짜처럼 느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사진을 치장하는 나의 모습이 가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결국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진이 되고 만다. 

7. 그리고 누군가에겐 나를 닮아 참 날 것인 이 사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해한다. 아름답지도, 예쁘지도, 무언갈 깊게 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사실이 그러니까. 난 이 순간을 아름답거나, 예뻐서, 어떤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촬영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러나 내게는 그 무엇이다. 강렬하게 자극하는 그 무엇. 

8. 나를 지도했던 대학 교수는 그런 나에게 '사진으로 자위한다'라고 말했다. 누구든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는 그렇게 했다. 충격은 1주일이나 지속됐다. 그리고 1주일 뒤, 나는 사진으로 자위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사진으로 타인의 욕망을 해소해주고 싶지 않았다. 자위는 얼마나 평화로운 행위인가. 왜 타인의 것으로 자신의 욕망, 욕구를 충족하려 하는가. 그렇게 나는 나로 더욱 파고들었다. 

9. 새로운 카메라, 렌즈를 홍보하는 역할을 했던 적이 있다. 늘 신기종을 사용해본다는 기쁨도 잠시 매 순간 담고 있지만 계속해서 텅 빈 프레임을 바라보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사람처럼, 강박적으로 계속 무언갈 찍고 있었지만 비어있는 듯했다. 그렇게 강박적으로 찍은 사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됐다. 픽셀 덩어리로 외장하드 한편을 차지하는 셀룰라이트가 됐다. 그것은 나의 월급이었고, 나의 성취였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아무것도 아닌 사진이다. 

10. 시간은 가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언가로 바꾸기도 한다. 2008년, 첫 디지털카메라의 사진이 그렇다. 여러 번의 포맷을 거치고도 살아남은 정예 멤버. 엉망인 사진이 그리운 날이면 아무것도 아닌 폴더를 열어본다. 그리고 잠시 마나 추억을 지닌 무엇으로 내 곁에 있는다. 그래서 어떤 사진이든 지우는 것은 오래도록 진지하게 고민한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끔은 무엇이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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