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뒤셀도르퍼 Jun 01. 2017

왜 나는 널 찍었던 걸까

메모리 속을 부유하는 사진들에게

1. 인생에 있어 그렇듯 사진을 열심히 정리하는 편은 아니다. 필름 잊은 지 오래라 한컷 한컷에 정성을 기울이는 편도 아니다. 똑딱이 하나를 들고 산책하면서 내키는 대로 찍고, 64기가 메모리가 가득 찰 즈음이나 며칠 여행을 떠나게 될 때면 비로소 사진을 꺼내어 (이것도 최근에야) 월별로 정리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무슨 생각으로 이 많은 사진을 찍었나..'

2. 한 컷 정도야 가벼이 넘어갈 정도지만 구도까지 다양하게 촬영한 장면들도 제법 있다. 멋진 풍경도 아니고, 인물 사진은 더더욱 아닌. 의아하다. 사진을 옮기자마자 열심히 꺼내어 셀렉하고 보정하는 성격이 못된지라 일단 그냥 저장. 

3. 최소 6개월이 지나면 폴더를 뒤적인다. 글감을 위한 전략적 목적도 있지만 사실 그 모호한 사진이 인상에 남아 찾아보는 일이 더 잦은 편이다. 그러니까 그런 사진들은 의문과 함께 잠상으로 남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러 개의 폴더를 뒤적거린 뒤에야 비로소 찾아낸 사진.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럴 땐 쓱싹쓱싹 약간의 변화를 줘본다. 변화가 어울리면 좋지만, 어색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일 때는 과감히 원상태로 돌린다. 생긴 대로 살라고. 

4. '왜 찍은 것인지' 혹은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묻는 역할을 많이 했었다. 배웠지만 직접 경험해본 적 없는 '작가'라는 직업. 그래서 나는 그들이 늘 확고한 목적 하나로 올곧은 길을 가는 줄만 알았다. 

5. '나는 00을 주제로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제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느껴줬으면 좋겠어요.'라는 답변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 자유 안에서 글을 썼다. 그리고 그들이 선사한 자유는 내 사진에도 서서히 물든 것 같다. 

6. '저기.. 왜 제 메모리 카드에 계시는 거죠?'라고 이 의미도, 정체도 모를 사진들에게 묻는다. 묻는 시간은 곧 답을 하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 그 날의 나를 기억하려 애쓰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참을 보고 또 보다가 장면이 내 눈에 거슬렸던, 그래서 찍을 수밖에 없었던 무엇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별표 다섯 개를 붙여준다. 

7. 내가 훗날 찾은 그 의미들이 정말 촬영하게 된 계기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촬영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 역시 한 명의 관객이 되어, 메모리 카드 속 사진을 곰곰이 살펴봐야 한다. 셀렉 되고 수정돼 저장된 이후에도 사진을 사용할 때마다 '이 사진이 선택된 이유'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기억력이 짧고, 그 의미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 

8. 순간에 충실할 것, 의미에 자유로워질 것, 매번 새롭게 느껴도 될 것. 하잘 것 없지만 나의 스냅사진은 매 순간 다른 의미로, 다른 목적으로, 다른 이야기로 짝지어지고 다시 흩어진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그때를 기다리며 부유한다. 부유할 것. 가볍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그것이 낱장 짜리 스냅사진의 묘미 일지 모른다.

9. 이번에 모인 사진들은 정말로 부유하고 있어 그간 특별히 어디에 쓸모를 찾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것들이 오늘은 이곳에 정착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이 글을 보며, 나는 이 사진들이 이곳에도 정착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그다음 달에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10. 스스로에게 묻지만 정해진 답이 없는 행위. 나에겐 그것이 사진 찍는 이유일 수도 혹은 여전히 사진을 모르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