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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Jul 07. 2017

당신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나도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1. 삶은 1인칭 시점이지만 사진은 1인칭 주인공을 바라보는 3인칭 작가적 시점이다. 나는 그들의 삶에 들어갈 수 없지만 그들이 발 딛고 있는 그 시간의 분위기를 찍는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덧씌운다. 사람은 사진을 바꾼다. 그들은 평범한 풍경 속에서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된다. 

2. 그들은 나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그 시간 그곳에 있었다는 것. 사진은 정체 모를 그들을 증명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오래도록 그들을 간직하고 기억한다. 그들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카메라가 남긴 사진 한 장이다. 프린트되지 않는다면 0과 1로 구성된 파일일 뿐인 그것. 가벼이 지워질 수 있지만 그들은 지울 수 없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3. 낯선 길을 걸을 때 슬며시 카메라를 집어 든다. 하지만 낮고 눈에 띄지 않게, 여행자이지만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게, 모두와 비슷한 거리를 걷지만 내 카메라는 다른 것을 담도록.  

4. 당신들은 아주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있고, 당신들의 모습은 그 풍경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이다. 멋진 자연환경과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내가 어떤 카메라를 들었는지, 얼마나 사진을 공부한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진을 엉망으로 찍어도 혹은 전혀 찍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그 자체로 보이니까. 

5. 당신이 이곳에 있기 전에 그리고 당신이 이곳을 떠난 후에도 나는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헛헛했던 이 장소를 가득 채운 그 순간을 늘 사진으로나마 다시 기억한다. 

6. 길바닥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쉽다. 그리고 그 길바닥에서 나에게 유의미한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사진으로 찍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재미없고 쉬운 사진을 찍거나 심장이 떨릴 만큼 어려운 사진을 찍는다. 어려운 사진들은 다시 꺼내보는 일도 심장이 떨린다. 그들의 내밀한 순간과 셔터가 작동하는 순간. 그것이 맞닿은, 우리가 맞닿은 그 찰나는 아직도 두근거리게 한다. 

7. 사람과 사람, 그 공간과 시간에서의 우연한 만남은 카메라가 허용하는 그 거리까지이다. 우리가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에 담긴 사람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그 시간, 그 공간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진작가라도,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라도 우리의 관계와 같은 사진은 더 이상 찍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당신과의 사진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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