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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09. 2017

사진의 색은 진짜일까?

RGB로 입력된 또 다른 세상

1.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가 디폴트처럼 여겨지듯 80년대 생인 나에게 사진은 언제나 컬러였다. '제대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할 때는 흑백 필름을 다뤘지만 내 눈에는 컬러 사진이 더 자연스러웠다. 흑백 사진은 기존과 다른 느낌에 새로웠지만, 어딘가 표현이 제한적이었다. 세상은 알록달록한데 사진은 그걸 다 표현할 수가 없으니까. 

2. 하지만 이내 깨달은 바는 컬러 사진 역시 진짜 색이 아니라는 것. 같은 사물을 포지티브 필름과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었을 때 색이 달랐고, 필름 회사마다 또 필름 종류마다 발색이 달랐다. 인상주의 회화가 아니라도 사물은 이렇게 매번 다른 색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3. 디지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캐논과 니콘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은 각 회사의 촬상소자가 만드는 색의 차이에 예민했다. RAW 파일로 촬영하고 후보정을 해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 나 역시 직접 작업을 하며 그 차이를 느껴본 바로는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4. 촬영하는 순간 기종이나 필름의 차이만으로도 색이 바뀌는데 밝은 방이나 어두운 방에 들어서면 색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컬러 필름을 암실에서 인화한다면 무척이나 '빡치는' 일이 많아 오래 작업하기 어렵지만, 간단하게 마우스로 조절하거나 프리셋을 적용시킬 수 있는 라이트룸은 색을 더욱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5. 후보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진은 바뀐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색'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이라는 것이 수치화된 것이 아니기에 기억의 색이 사진의 색으로 구현된 것인지는 증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냥 보기 좋은 색으로 보정한다. 조화가 되거나 튀게 만들어서 시선 집중을 시킬 수 있도록. 

6.' 사진의 색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확한 색을 알기 위해 수십 번 컬러 픽커를 찍고, 고오급 장비로 캘리브레이션을 하는 사진가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시시각각 변하는 풍광의 색이 중요했듯, 카메라를 쥔 이들에게 색은 제법 중요하다. 

도쿄의 한 공원, 초록색 필터를 낀 가로등은 주변을 모두 초록색으로 덮는다. + 카메라 자체 설정을 색상 강조로 선택했기에 조금 더 강한 초록의 느낌이 나온다.

7. 스마트폰 사진 애플리케이션의 필터들은 이런 우리를 비웃듯 색을 마구 비튼다. 산이 분홍색이 되고, 평범한 바다가 애매랄드 빛을 띤다. 노란색의 살은 하얗게 변하고, 까만 머리도 갈색이 되게 만든다. 한 번은 SNS를 구경하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다. 여행 관련 페이지에 뉴욕 사진이라며 올라왔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미지인 것이다. 모든 나무가 파스텔 톤의 분홍색이었고, 그에 대비되는 하늘과 강은 디테일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랗게 되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왜곡된 색이었다. 분명 필터나 후보정을 거쳤을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뷰티팩토리에 업로드된 뉴욕 사진(페이지에 출처가 없어 밝히지 못함)

8. 더욱 놀라웠던 것은 사진에 달린 댓글. "여기가 뉴욕이래!", "여기서 인생 사진 찍자!", "여기 가면 사진 찍으려고 줄 서 있겠는데?", "뉴욕 가자!" 등 진짜 현존하는 풍경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뉴욕을 경험했거나, 사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사진 색 바꾼 거 같은데, 이런 곳이 실제로 있을 리가", "포토샵 지리구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왜곡된 색으로 만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졌는데, 사진을 세상의 투명한 창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겐 언젠가 노력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가 되는 것일까. 

페이스북 페이지 뷰티팩토리에 업로드된 뉴욕 사진(페이지에 출처가 없어 밝히지 못함)

9. 사진의 색이 가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현실의 색과 다른 것은 사실이다. 여행 페이지에 올라오는 수없이 올라오는 멋진 사진들은 사실 사진 속에만 있는 경우가 많다.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자꾸만 사진에 매료돼 그 사진 속 현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맨눈으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SNS 속 사진이 멋진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그곳에 도착해 스마트폰 사진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비슷한 필터를 선택하고 액정을 보자. 카메라와 필터를 거쳐 머릿속에 그려왔던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뷰티팩토리에 업로드된 뉴욕 사진(페이지에 출처가 없어 밝히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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