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J May 05. 2024

Strategy Sessions

글로벌 포트폴리오 전략

2010년대 초 국민연금은 좋은 투자 건들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글로벌 시장 그 누구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좋은 파이프라인(아직 실행되지는 않은, 조달된 투자 기회)과 함께,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관리로 높은 실적을 달성하던 시기였다. 국민연금이 사모시장 Private Markets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매년 수조 원의 신규 투자를 집행했다. J-Curve 효과(비용과 안정화에 들어가는 기간 등의 요인으로 투자 초기에 낮은 수익률을 보이는 현상)를 고려하면, 그 시기의 실적은 예외적인 것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경기변동 상의 타이밍과,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아 공격적인 투자를 실행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좋은 실적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아직 금융위기의 그늘에 있던 시기, 일 년에 네 번의 감사를 받는 대한민국의 공기업이 외부의 영향과 견제를 뚫어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윤표 해외대체실장, 강영구 해외부동산팀장 등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이밍과 리더십 외에 두 번째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해외대체실의 "Annual Strategy Sessions"이었다. 매년 말이 되면, 각 섹터의 투자를 담당하는 부서들은 그다음 해의 투자예산을 부여받는다. 이는 기금 전체에 대한 자산배분의 결과로, 주식, 채권, 대체(현재는 부동산, PE, 인프라스트럭쳐가 구분되어 있다)에 각각의 투자 목표가 부여되며, 각 부서는 세부계획안을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이 세부계획안은 각 반기마다 시장상황과 투자진행 정도에 따라 다시 한번 수정된다. 


Annual Strategy Sessions라 불리던 것은, 우리가 외부의 운용사들로부터 시장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었다. 11월 즈음, 각 대륙별로 3~4개 정도 운용사를 선정한다. 대부분 기존 관계가 있는 운용사들 중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곳들이 선정되지만, 리서치와 포트폴리오 분석이 약한 사모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강력한 리서치팀을 보유한 곳들이 추가되기도 한다. 각각의 운용사들에게 1) 다음 해 시장 전망, 2) 그에 따라 유망한 투자 전략 및 지역, 그리고 3) 곧 출시되는 해당 운용사의 상품을 발표하도록 한다. 어떤 운용사는 글로벌 전략에 대한 세션을 별도로 발표하기도 한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 것 같은가? 특출난 운용사는 역시나 대부분의 시장참여자들과 생각이 다를 것인가? 내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 3~4개의 "특별한" 운용사들이 꼽은 좋은 투자전략은 많은 부분 겹친다. 좋은 운용사들은 똑똑하고 시장의 변화 또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만, 무엇보다 실행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팀들이다. 누구나 좋은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모시장에서의 투자는 매크로에 대한 전망과 함께 팀의 실행력과 마이크로 역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집된 시장의 정보들은 다시금 실행을 위해 분류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전략을 개별 프로젝트를 통해 접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운용사의 펀드를 통해 집행할 것인가? 투자예산의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 투자 예산이 클수록, 프로젝트가 유리하다. 펀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집행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속도와 효율성 또한 다른 고려사항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 운용사에 권한을 주고 맡기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투자자는 대부분 공기업 혹은 금융기관인만큼 느릴 수 밖에 없다. 


규모가 큰 글로벌 주요 연기금이라면 SMA(Separately Managed Account, 투자자가 하나 밖에 없는 맞춤화된 펀드)를 통해 전략과 운용사를 독점해버릴 수도 있다. 운용사 입장에서는 여러 투자자를 모으는 것보다는 커다란 한두 곳의 투자자를 통해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여러모로 간편하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전략과 함께 그 전략을 잘 실행해 줄 운용사를 독점하여 자산배분을 늘리고, 다른 투자자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 GIC와 CPPIB 등이 JV나 SMA를 조성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 이유이다.   


한달여 기간 세션들이 끝나면, 투자계획안에는 지역, 전략 및 투자기구에 대한 분석이 상세하게 담긴다. 실제 집행 시점과 방안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온다. 


기관투자자로 일하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정보가 모인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주요 LP들에게는 그 어떤 GP (General Partner, 운용사) 보다 많은 시장 정보와 기회가 모인다. 이 정보들을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연금의 리더십들은 정보의 체계화와 함께 글로벌 전략을 수립했고, 시장 내 역학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이를 실행했다. 정보를 체계화하고,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실행한다. 십여년 전 뿐만 아니라 십여년 후에도 성공할 수 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이전 14화 Business Trip. 두 번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