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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Apr 28. 2024

Business Trip. 두 번째

모든 투자는 지역적이다

2017년 1월의 마지막날, 시카고 오헤어 공항 O'Hare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하네다 공항 Haneda Airport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에서 이틀을 보내고 서울에서 일주일, 북경에서 하루를 보내는 계획이었다. 월튼 스트리트 캐피탈 Walton Street Capital에서 아시아 담당이 된 후로 전형적인 출장 일정이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 일주일 혹은 일주일 반 정도의 일정. 가능한 주말을 끼우지 않을 수 있으면 좋다. 2주일 정도면 내 몸이 동북아시아의 시간대에 적응해 버린다. 돌아온 후까지 시차적응으로 힘들고 싶지 않다면, 최대의 출장 기간은 2주 이내로 줄여야만 한다. 


이 일의 어려움은 늘 글로벌과 로컬의 간극에서 왔다. 국민연금에서 기관투자자로서 투자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해외투자를 시작했을 때, 나는 계량 단위에서부터 (sf을 아직도 쓰는 나라 중 하나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이다) 문화까지 온갖 차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미국 2위의 식수 배송 업체에 투자할 때 가장 설명하기 힘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미국인은 왜 정수기를 그렇게 못 믿을까? 우리나라처럼 정수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 끝나는 것 아냐?"


아니다.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믿음이었다면 이미 변했다. 그것은 왜 그들이 아직도 미터법을 쓰지 않고 있으며 미터법으로 계량단위가 변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물음이다. 


자본은 전세계를 쉽게도 여행한다. 다행히도 은행들은 우리가 SWIFT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 없이 자본을 이동시켜 주며, 고맙게도 변호사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의 변호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적절한 서류만 있다면 돈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영어만 할 수 있다면 전세계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어느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중국어와 스페인어까지 한다면 글로벌 인구의 과반수와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진정한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정 글로벌이 되었다면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가며 시차적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국민연금 시절 우리를 괴롭히던 호텔비와 항공료 예산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월튼 스트리트 또한 굳이 아시아계인 나를 뽑아 아시아를 담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한국에서 자라온 나는 많은 한자를 이해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어,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대강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다. 


모든 투자는 지역적이다. 사모투자를 오래 한 이들이라면 몸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해외로 가든, 그들이 한국으로 오든 사람들이 만나야만 한다. 사람을 만나 신뢰하지 않으면 결코 진지한 투자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 투자의 대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왜 우리는 물 배송 업체가 아닌 정수기 렌탈 업체에 투자하는가?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미국과 달리 정수기를 믿기 때문이다. 왜 한국에서는 식기세척기가 자리잡는데 오랜 기간이 걸렸는가? 아시아인들은 식기세척기를 못 믿기 때문이다. (이를 풍자한 수많은 미국 TV쇼가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관투자자는 해당 국가와 지역의 공공기관 혹은 공공기관의 통제를 받는 금융기관이다. 해당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왜 국민연금은 투자 한 건을 하기 위해 20여건이 넘는 결제를 받아야하고, CPPIB는 빠른 직접 투자가 가능한 것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캐나다의 정치, 역사,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펀드레이징을 하는 이들은 투자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는 투자를 받기 어렵다. 


돈과 물자를 들고 거래를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실크로드의 상인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자본을 옮기기 위해 직접 여행을 해야 한다. 모든 글로벌 투자는 지역적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투자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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