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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Sep 15. 2024

 짧지만 길었던 시절의 마감

곰탕집 하동관이 명동의 한옥에 있던 시기, 나는 그 유명한 곰탕 맛을 먹으면서 느낀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 곰탕을 받아들면,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던 기다리는 이들이 일제히 나와 내 곰탕을 바라본다. 그 눈빛을 받고 있으면 정말이지 빨리 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함께 식사를 하는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을 끝내고 나온다. 계산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야 정말 맛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의 국민연금 시절도 이와 같았다.


잘 모르는 해외 시장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해야했던 나는, 실수 없이 좋은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공공조직의 수많은 절차들과, 투자에 대한 열정 따위는 공유하지 않는, 감사기관들의 수많은 질의들로, 낮에는 행정처리에 시달리고 밤이 되어서야 투자 자료를 검토하고 컨퍼런스콜을 했다. 가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투자 건 하나를 마무리한 후에야, 그제서야 재밌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새로운 건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운용역이었던 나는, 해외시장에서 헤메게 된 것에 대해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첫 2년을 보냈다. 일을 시작하고 첫 한달만에 생긴 두 가지 강박을 2년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완벽한 투자에 대한 강박과 언제든 때가 되면 회사를 나가야겠다는 강박이었다. 되찾아가던 자신감과 다양한 투자에 대한 즐거움은 하동관 곰탕처럼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2년이 아닌 바로 하루 전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정말 열심히 했고, 정말 힘들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연말이 지나, 해외대체를 총괄하던 이윤표 실장님(현 Morgan Stanley Investment Management 한국 대표)께 유학을 준비하겠다 말씀을 드리고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일을 하려면 해외에 나가야겠다 싶었다. 어렵게 얻은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윤표 실장님은 Head of Private Markets여도 공공기관에서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보상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내가 남기를 원하셨지만, 기꺼이 추천서를 써주겠다 약속해 주었다.


실제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손이 부족한 PE 쪽을 돕기로 하였다. 일년남짓 PE 투자를 진행하면서도 나는 상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직원으로, 팀원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만큼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박 속에 살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 새 일을 하고는, 일한 만큼 서러워했다.  


일든 더 힘들어졌다. 일을 진행하는 와중에 유학 준비를 하고, 인터뷰를 볼 때 즈음엔 결혼도 했다. 밤을 샌 다음 날 아침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학교를 헷갈린 경험도 있다. 나는 기존 경영학과 전공자를 위한 1년짜리 Accelerated MBA를 선택했고, 학교에서도 늘 바빴다. 모든 것이 끝나고 시카고에 정착을 한 이후에서야, 지난 세월을 돌아볼 여유와 나의 잘못을 이야기할 용기가 생겼다. 그 때부터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해외투자를 하는 이들이 적어도 내가 거친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십여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갔고, 이제는 보다 많은 인력이 조금은 더 개선된 환경에서 우리가 하던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기관투자자에서 일하는 운용역들이 해외투자의 즐거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글로벌 투자자들과 과감한 경쟁을 하고 있는 당신을 응원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기관투자자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멋진 성과를 거두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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