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장에서 대부분의 시작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국민연금 생활을 마무리하던 2014년 즈음 국민연금 해외대체실(Private Markets Division)은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연금 규모의 증가와 함께 사모시장에 대한 배분율 증가로, 포트폴리오 규모가 크게 증가했는데, 건당 규모는 그만큼 증가하기 어려웠다. 결국 투자 건의 수가 급증했다. 그 즈음 우리보다 운용역 수가 훨씬 많은 CPPIB와 GIC가 적정 매니저의 수를 관리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오래지 않아, 우리도 적정 매니저의 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LP들이 점진적으로 포트폴리오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너무 많은 수의 매니저와 의사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제부터는 규모가 크고 다양한 라인업을 지닌 메가(Mega) 운용사가 유리하다. 특히 잘 관리된 플래그십(Flagship) 펀드를 보유했다면, 새로운 팀을 구성해 신규 상품을 출시할 때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기가 쉬워졌다. 이런 현상은 십여년 전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학 시절 Asset Manaement Practicum("AMP")의 운용역으로서 내 투자 핏치(Pitch) 중 하나는 KKR(NYSE: KKR)이었다. 손꼽는 규모의 글로벌 PE업체였으나, 블랙스톤 대비 섹터와 전략에서의 라인업이 적었다. 하지만, LP들이 운용사 수를 줄여가는 트렌드를 보았을 때, KKR은 분명히 이 혜택을 볼 터였다. 과거 5년 동안 KKR의 주가는 다섯 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주요 LP에 대한 정치적인 영향이 한 몫을 담당하였다. 블랙스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신생 운용사의 펀드에 투자하는 것보다 쉽게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감사인들에게 섹터와 전략의 전문성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블랙스톤의 운용역들이 한 번도 운용해 본 적이 없는 섹터와 전략이라도 중요하지 않다. 시타델이 운용하는 PEF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감사인들은 LP 운용역들의 능력을 쉽게 무시하고, 그들의 청렴성을 쉽게 의심한다.
더불어, 요즈음 시장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PE사의 시작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이미 성공한 메가 펀드의 주요 운용역으로, 독립 전에 주요 LP들의 지지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한국 PE사들인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등은 각각 칼라일,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의 대표급 인사들이 새로이 팀을 구성하고 LP들의 지지를 받아 시작한 하우스들이다. 곧, IMM, 스틱 등 국내 1세대 펀드들에서 파생된 하우스들이 곧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건강한 시장의 발전을 위해 미약한 시작이 많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의 빛나는 투자 아이디어가 그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젊은 LP 운용역들이 그 아이디어를 위해 내부를 설득해 주어야 한다. 나는 LP의 업무가 단순히 GP들의 아이디어 중 하나를 선택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투자자로서 조금 더 열정적으로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규모가 큰 PE 하우스들에 투자하는 것이 꼭 잘못은 아니다. 효율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메가펀드와 메가펀드에서와 같은 전략으로 파생된 하우스에만 투자한다면, 그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실제로 시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은 LP이다. 그 중에서도 미래의 시장을 가장 많이 바꿀 수 있는 이는 LP의 젊은 운용역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