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지지자 알브레히트 뒤러
16세기 유럽 미술을 변혁시킨 것은 조형미술을 부흥시킨 르네상스 운동과 기독교 회화 일체를 비난한 종교개혁이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위대한 독일 회화 거장들이 등장한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 1470-1528)와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가 바로 그 들이다.
그중 알브레히트 뒤러의 회화와 판화는 정밀한 채색과 형태의 엄격성으로 인해 새로운 회화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뒤러 일생 후반의 정점에 그려진 한 쌍의 패놀화 <네 명의 사도들>이 이러한 이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526년 이 작품을 완성한 후 뒤러는 이 작품을 뉘른베르크시에 기증하였다.
이 작품을 마주하면 우리는 시각적으로 명쾌한 형태 감각을 느끼는 동시에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이 작품은 초대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종교개혁 의지에 동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뒤러의 진지한 종교적 성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화면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요한, 베드로, 마가, 바울의 네 사도들을 좌우 두 사람씩 그리고 있는데 붉은 가운을 걸친 채 자신이 쓴 복음서를 든 요한과 종교개혁의 핵심 내용이 들어간 복음서들을 집필한 바울이 그림 전면에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베드로와 마가는 그 배후에 그려져 있다. 네 사도 각각의 개성이 면밀하고 예리하게 묘사되어 있다.
루터가 특히 좋아한 요한을 인자한 성자로 전면에 드러내어 표현한 반면 가톨릭의 대표적인 성자인 베드로를 천국 열쇠를 가진 아량이 넘치는 노인으로 그림 뒤편에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제2의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와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 오직 믿음과 은혜와 성경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을 곳곳헤 전파한 바울은 엄숙한 자세와 사물을 꿰뚫을 듯한 시선을 하고 큰 성서를 들고 있다.
그림 아래에는 루터가 번역한 복음서에서 인용한 글, ‘따라서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당신들 가운데 위선자들이 있다. 법률학자들이여 정신 차려라. 말세에 어려움이 온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글에는 인간의 오류와 허영을 신의 의지로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으며, 기독교 본질을 회복하려는 종교개혁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네 명의 인물 특성이 일반적인 자연의 네 가지 특성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다는 설이 있다. 일 년 사계절, 하루 동안 태양이 나타나는 4단계, 인생의 4단계 등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당시 인간의 4가지 특성은 낙천적이고 온화한 다혈체질, 우유부단한 점액체질, 차가운 통찰력을 가진 우울체질, 내성적인 담즙체질로 나눠졌다. 그림을 보면서 각 인물이 무슨 특성을 나타내는지 한번 유추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뒤러는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을 추구하였다. 그가 비록 생계를 위해 그뤼네발트 같은 가톨릭 후원자들을 위해서 작품을 제작했다 하더라도 뒤러는 루터의 종교개혁 지지자였다. 그의 이러한 신앙 내면은 <네 명의 사도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