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앙인의 내면을 그린 화가
17세기의 바로크 화가 렘브란트(Rembrant van Rijn, 1606~1669)는 인간의 존엄성과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심도 있는 종교화를 그렸다.
렘브란트의 종교화는 그가 겪은 삶 속에서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 번뇌, 그리고 성서를 묵상하면서 느껴지는 인간의 심리 묘사 등을 비중 있게 화면에 나타내고 있다. 특히 따뜻한 황금색의 빛나 는 색조 속에 인간의 영혼이 훌륭하게 포착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유럽 회화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1606년 네덜란드 비텐 스테크에서 제분업자 하르멘 게리쯔와 빵 제조업자의 딸 코르델리아 사이에 열 명의 자녀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렘브란트는 1620년 라이덴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1년도 되지 않아 화가로서 출세할 결심을 굳히고 이탈리아에서 훈련받은 화가 야곱 이삭(Jacob Isaacsz)의 아트리에에서 3년간 수업을 받았다. 이후 암스테르담의 피테르 라스트만에게서 이탈리아 회화의 기법을 익혔고 특히 카라밧치오 풍의 명암법의 영향을 받았다.
1625년부터 1631년에 걸친 라이덴 시대에 비롯되는 초기에서부터 일괄하여, 그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밝은 세속적 작풍과는 다르게 어두운 내면적, 집중적인 작풍으로 성서를 주제로 그렸다. '드비아스와 그 아내', '사원의 시메온', '성 가족' 등이 초기의 대표작이다.
1632년부터 1641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당시 최고의 초상화가로서 많은 주문을 받았다.
1634년 28세의 렘브란트는 사스키아와 결혼하여 개인적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당시에 제작된 작품으로는 '사스키아와 건배하는 렘브란트', '자화상', 다섯 장으로 구성된 연작 '수난', '뇌우의 풍경' 등으로 종교화보다는 일반 시민의 생활 감정을 내면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1642년 렘브란트는 '야경'의 제작과 함께 커다란 작품의 전환기를 맞았다. 원래 집단 초상화는 거기에 표현되는 구성원을 동격으로 취급할 것을 요구당했는데, '야경'에서 그는 이 요구를 무시해 버렸기 때문에 이 걸작은 비판을 받았고 이후는 주문도 줄어들었다. 같은 해 아내의 사망 후 렘브란트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고독과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계속된 작업은 후에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성서의 해석의 독특함은 성서의 정경을 인간적 관점에서 보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의 중심은 따뜻한 황금 색으로 인간의 영적인 생명력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645년 39세의 렘브란트는 동거 중이던 가정부 헨드릭게 스트훼르소와 재혼하였는데, 생활고는 더욱 심하여져서 1656년에는 파산을 선고당했다. 그는 집과 많은 미술 수집품을 잃고 유태인 빈민촌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1669년 10 월 4일에 생을 마감했다.
렘브란트는 만년에 '돌아온 탕자', '목욕하는 바레시바', '사원 속의 시메온' 등 걸작을 남겼다. 또한 그의 자화상 80여 점에서 그 삶의 고비마다의 내면의 정서를 추측할 수 있으며, 이외 동판화 300여 점이 남아 있고 소묘도 무려 1,500여 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