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종교화의 거장
프랑스 파리 출신인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20세기 종교화의 거장인 동시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와 함께 뛰어난 야수파 화가로 현대회화의 증인으로 불린다. 마티스는 밝은 삶을 추구한데 비하여, 루오는 기독교 사상을 토대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였다.
루오는 1871년 5월 29일 파리에서 빈곤한 가구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10세부터 그림 공부를 시작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14세부터 공예 미술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주간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업자의 견습공으로 일하였다.
1890년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엘리 도르네와 구스타프 모로의 제자가 되었다. 여기서 마티스,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guet, 1875~1947) 등과 알게 되었으며 서로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재능을 개발해나갔다.
1903년부터 루오의 스승 모로가 국가에 기증한 모로미술관 관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모로풍인 그 작품은 변하기 시작하여, 격렬하고 동적인 분방한 선과 심청색(深靑色, 짙고 푸른 청색)을 주로 한 수채화나 과슈화를 그렸다. 창부, 어릿광대 등 멸시받고 가난한 인간들의 우울하고 거친 내면 깊은 곳을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1908년 이후부터는 재판관이나 재판의 전경을 그려, 악덕 위선에 대한 혐오를 격렬한 색면(色面)과 굵은 선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최초의 개인전은 1910년 두르네 화랑에서 열었다. 루오는 판화 제작에 몰두하여 <미제레레>(Miserere, 1917-27) 같은 종교화 연작을 완성하였고 이어 1930년대 들어서는 <예수의 수난>(Christ’s passion)을 제작하였다.
루오는 우리가 처한 힘들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우리의 삶이 영광에 이르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루오의 그림을 통해 내면의 위로를 받았고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파리 자택에서 1958년 2월 13일 87세로 운명하였으며, 그의 장례는 성 조루 망데 뿌레 교회에서 영예스러운 국장(國葬)으로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