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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Apr 02. 2022

도메니코의 최후의 만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Chirlandaio)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Chirlandaio, 1449~1494)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동시에 15세기 말엽 피렌체의 대표적인 화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미첼란젤로가 보여준 대담한 상상력의 표현이나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보티첼리의 이상적인 환상세계의 표현이 아닌, 오직 그의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 즉 주제의 대상이 지닌 감각적인 매력을 사실적으로 세부 묘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예술세계는 사실적이면서도 그 사물 가운데 숨겨진 시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림 속 인물들을 품위 있고 가치 있는 인간의 고귀한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성서의 말씀을 주제로 한 종교적인 내용을 표현함에 있어 건축적인 배경과 인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이 작품은 1486년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소식당에 프레스코 벽화로 그린 <최후의 만찬> 중 중심 부분의 화면이다. 따라서 이 화면은 작품 내용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석상에서 축복을 하시는 장면이다.

최후의 만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1486)

 <최후의 만찬>의 전체 화면을 살펴보면 종교화의 전통적인 구도로서 배신자 유다는 식탁 반대쪽에 등을 보이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그 제자들을 배석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은 현실 세계를 중심으로 한 벽에 붙은 꽃 병, 새가 나는 수도원의 뜰 등 자연풍경까지 건축 내부의 장식적 요소로 그리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을 들어 축복을 베푸시는 인자하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의 품 안에 포근하게 의지하고 있는 요한,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른손에 빵 조각을 들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다를 볼 수 있다. 또한 베드로가 오른손에 칼을 움켜쥐고 상기된 눈초리로 유다를 바라보는 긴장된 모습과는 달리 다른 제자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지루한 연회장의 손님처럼 앉아 구세주의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화면 전체의 분위기 속에는 차분하면서도 긴장감이 도는 드라마틱한 흐름이 있다.


 

 <최후의 만찬>에 등장한 인물들의 사실적인 묘사 하나만 보더라도 기를란다요는 타고난 초상화가이며, 실재의 명사들을 복음서의 조역으로 등장시키기 위하여 성상의 주제를 이용한다는, 유럽 15세기 회화의 유행을 최고로 잘 살린 화가이다.


그리고 그의 인물 묘사는 단지 정확한 묘사에만 만족지 않는 높은 차원의 품격이 있으며, 인물이나 풍경이 매우 균형 잡힌 구도로 건축적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최후의 만찬>의 작품 앞에 서면 그가 구현한 구세주의 참사랑을 느낄 수 있고 조화롭고 풍부한 분위기에 그림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본명은 도메니코 비콜디 (Domenico Bigordi)이다. 그는 1449년 피렌체에서 금은 세공업을 하는 토마스 비콜디 (Tommaso Bigordi)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세 이래 오랜 전통을 이어받은 공예가 집안의 일원으로서 15세기 중반 피렌체의 젊은 숙녀들이 머리에 쓰는 화환 장식을 고안하여 유행시킨 최초의 사람이며, 그 장식을 ‘기를란데’라고 불렀으므로 그는 ‘기를란다요’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미술적 자원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과 흥미를 가지고 성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어려운 일에도 즐거이 책임을 다 하였다고 한다. 대대로 예술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기를란다요 가계는 그의 두 동생뿐 아니라 아들까지도 화가, 공예가로서 활약하였다. 그의 아우 다빗드는 형을 협력하면서 화가로서 피렌체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또 한 사람의 아우 베네뎃트도 장식 사본(Miniature)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공예가였으며, 그의 아들 리돌프도 화가로서 그의 공방(空房)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는 생애에 두 번의 결혼으로 9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1494년 돌연 흑사병으로 죽기까지 20여 년간 왕성한 제작 활동으로 많은 제단 벽화를 남겼다.


기를란다요는 화가로서 최초의 화업을 시작한 연대는 1470년 경이었으며, 특기할 만한 작품들은 1480년 피렌오니 산데 성당 식당의 <최후의 만찬>, 이어서 1481년 로마 교황 시크스도우스 4세의 초청으로 바티칸 궁내에 새로 건축한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린 <베드로와 앙드에의 소명>은 그의 중요한 기록의 하나이다.

그 후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1482년부터 제자들과 같이 시청사의 장식 활동에 종사하면서 1485년 산타 도리니다 성당 사셋데 예배당의 제단화로 그린 <성탄>, 그리고 1486년 나루니의 대성당에 그린 <성모 제관>, 1487년 <3현황의 예배> 등이 유명하다.

명실공히 기를란다요는 피렌체뿐만 아니라 로마까지 널리 알려진 자신(自信)과 활력이 넘치는 세련된 종교화가였으며 15세기를 풍요롭게 마무리 짓는 축복받은 화가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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