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라고 하면 누구나 다 뾰쪽 철탑이 솟은 성당의 창을 상상하고, 찬란하며 신비로운 빛을 연상할 것이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창은 이른바 번쩍이는 상형문자인 동시에 빛의 예술이다. 태양광선이 각도를 달리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 하는 색채의 양상은 아름다운 빛의 조화 즉, 화려, 영롱, 신비감 등이 온통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테인드 글라스 회화는 옛 로마 시대에도 있었던 것 같지만 유럽 중세의 성당 건축과 연결되어 발달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로마네스크 시대에도 약간의 예가 남아 있으나 12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딕 시대가 전개되자 높고 장엄한 공간을 형성하는 고딕 건축의 구조 때문에 창이 많아 필연적인 유리창의 장식예술로서 스테인드 글라스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스태인드 글라스의 황금시대는 1200년부터 1250년 사이의 약 50년간이었으며, 또한 고딕 회화를 대표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 회화가 가장 꽃 피운 13세기 후반의 파리 노트르담(Notre Dame) 대성당의 <장미의 창>을 들 수 있다.
파리 노트르담의 남북 트랜셈트의 거대하고 둥근 <장미의 창>은 ‘레요낭 양식’의 대표적인 걸작이다. 이것은 스태인드 글라스로 유명한 장인 장드셀(Jean de Chelles)이 만들었다. 이 창이 700년이 지나도 눈부시고 찬란한 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정의와 기사도, 종교적 경견성, 그리고 미술 작품성을 중요시했던 루이(Louis) 9세는 노트르담 성당 장식에 그의 재산을 쏟아 넣었고 그 결과는 프랑스의 위대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로 남았다.
노트르담의 북쪽 창을 보면 수많은 장미꽃 무늬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한 빛을 발산하고 있으며, 그 중심 원형 안에 성모자가 앉아 있다.
두 번째 원형에는 예수의 선조 33명의 구약에 등장한 왕들이 앉아 있으며, 마지막 원형에는 왕실의 계보, 그리고 예수의 하나님이심을 증거 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드 글라스에 표현되는 도상은 성서의 설교화이거나 성자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당 내부 공간에서의 색과 빛의 아름다움을 내세우는 이 스테인드 글라스 예술에서는 도상의 표현 못지않게 공예적인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공예적인 전통은 게르만 켈트족의 장식 공예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긴 중세의 역사를 통하여 소공예(예; 칠보)의 색면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광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예술로 발전시켰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스테인드 글라스는 중세 전기의 표현양식과 적색, 청색을 대담하게 사용한 구도가 특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미의 창> 역시 적색과 청색의 강렬한 한온대비(寒溫對比)를 이루고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 회화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각종 색유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형식에 맞추어 알맞게 절단하고 그것들을 납의 가는 레일로 접착시켜 모자이크처럼 그림 무늬의 판으로 만든 다음 필요에 따라서는 금속 틀 또는 그 위에 끼워 넣고 창에 부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중세의 유리 제조법이 유치했기 때문에 유리조각의 최대 크기는 몹시 제한되어 있어서 이 창을 만드는 예술가는 단지 ‘유리 위에 그린다’는 식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유리 두께의 불균형과 불순물의 혼합 때문에 그 조합에 따른 색의 변화가 심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스테인드 글라스를 더욱 신비롭게 하였다.
오히려 현대의 스테인드 글라스 회화는 유리 제조기술과 열처리에 의한 보채기술 (補彩技術)의 발달로 인해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보이는 정교한 장식성을 상실하여 스테인드 글라스 본래의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