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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Jun 24. 2022

성모자상 (Madonna Granduca)

라파엘로 산지오 (Raffaello Sanzio)

영지(英知)와 창조에 있어서 레오날도 다빈치를, 기백(氣魄)과 조형에 있어서 미켈란젤로를, 색채와 관능적 표현에 있어서 베네치아 화파들을 든다면, 라파엘로는 이 모두를 종합하여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화가랄 할 수 있겠다.


라파엘로는 짧은 기간에 이러한 선인들의 작품과 기법의 정수를 흡수하여 조화의 세계로 통일시키고 이상주의적으로 표현을 구현한 르네상스 정신을 체험한 온후하고도 원만한 휴머니스트였다. 인간을 이상화하여 미적으로 조화시킨 점은 바로 라파엘로 미술의 정수라 하겠다.

 

‘아름다운 사람을 그리려면 미인을 더욱 많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인은 언제나 부족하였으므로 나는 마음에서 우러난 아이디어를 이용한다.’라고 라파엘로는 1515년 카스테리오 백작에게 보낸 서신에 쓰고 있다.


성모자상 Madonna Granduca (라파엘로, 1505)


라파엘로의 작품 중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은 여기 소개하는 작품과 같은 성모자상이다. 모자의 사랑을 토대로 성경적인 주제를 많이 추구한 것은 8세 때 어머니를 잃은 그의 어린 시절의 심정을 성모자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성모자상은 그가 22세이었던 1505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성모가 성자를 안은 상반신상을 수직의 단순한 구도로 처리했는데, 암녹색 배경의 어두운 곳에서 밝게 떠오르는 성모자의 모습은 감미롭고 고고한 기풍을 풍긴다.

흔히들 이 작품에서 ‘모나리자’의 인상을 느낄 수 있다는데 그것은 그가 레오날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일명 ‘그란드카의 성모(Madonna Granduca)’라고 불리는 것은 한때 소장했던 소장자 Granduca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라파엘로는 성모자상들을 레오날도 다빈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던 피렌체에서 많이 그렸다. 예술 의욕이 왕성한 21세의 청년 화가 라파엘로는 1504년 가을, 청운의 뜻을 품고 예술의 도시 피렌체로 진출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1508년 로마로 이주하기 전 4년간 레오날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활기찬 예술 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가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한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제작한 성모자상들을 열거하면 <그란드카의 성모자상>을 비롯하여 1506 년경 샨데이의 <오르레안의 성모자상>과 1507년경 런던의 <부릿죠다의 성모자상>, 베를린의 <코론나 가(家)의 성모자상>, 그리고 1508년경의 뮌헨의 <덴피 가(家)의 성 모자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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