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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Aug 13. 2022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폴 고갱 (Paul Gauguin)

폴 고갱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프랑스 파리에서 아버지 클로비스 고갱과 어머니 알린 사잘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갱의 아버지는 자유주의 언론인으로서 신문 기고문 때문에 프랑스 당국의 추방령을 받고 망명하여 남미 리마로 가던 중 사망하였으며 그 후 고갱은 7세 때 고국으로 돌아온다.


고갱은 지역 학교와 가톨릭 신학 소학교 3년을 마치고, 바다를 동경하여 해법을 위한 도선사로 3년을 거쳐 프랑스 해군에 2년을 복무한다. 그리고 1871년 파리로 돌아온 그는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수입이 늘고 생활이 안정되어 1873년 덴마크 출신의 메테 소피 가드(1850~1920)와 결혼한다.  평화로운 부부생활을 하면서 10년 동안에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그림을 좋아하여 인상파 작품을 사들이고, 그 화가들과도 교제하여 그림 수업을 하고 1880년 제5회 인상파전에 그의 작품을 출품한다.


고갱은 1882년 증권시장이 붕괴하면서 더 이상 수입을 얻을 수가 없어 1883년에는 주식 거래소를 그만두고 35세에 전업화가로 출발한다. 전업화가로서 생활이 어려워져 아내 고향인 덴마크로 가는데, 덴마크에서 발표한 전시회도 실패하여 그는 처자를 남겨두고 단 한 아이만 데리고 파리에 돌아온다. 여기서 생활을 위해 포스터를 붙이는 일까지 하면서 부르타뉴의 퐁타벤으로 가서 젊은 화가들과 만 나고 또 파리에서 고흐를 만난다.


생활에 시달린 고갱은 문명에 대한 권태로움과 도시 생활의 추태, 기만 등에 반항하여 미개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는 원시 속에 꿈과 시가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 1887년 봄에 그는 남미로 건너가고 다시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지만 병을 얻어 귀국하여 젊은 화가들과 새로운 회화 이론을 주장한다. 고갱은 1888년 고흐의 초대로 아를에 가지만 고흐와의 싸움 후 우정이 깨져버리게 되고 미개척지를 염원하며 1891년 남 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남방의 색채와 미개한 생활을 그리던 그는 타히티를 좋아하고, 그 감동으로 수많은 작품을 그렸다. 고갱은 한번 파리에 돌아오지만 1895년 최종적으로 타히티에 돌아간다.  그러나 타히티에서의 삶은 작품 제작하는 기쁨을 제외하면 궁핍과 병마와 싸우는 생활이었으며, 1903년 5월 8일 미르키즈 제도 아투오나 섬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54세로 마친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20세기 초기에 일어난 근대회화의 유파(야수 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추상주의)를 이야기하면 세잔느, 고흐를 비롯한 3대 후기 인상파 화가로서 종합주의 색채론에 입각한 그의 역할과 영향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폴 고갱(Paul Goguin, 1848~1903)은 근대 회화의 공통사인 ‘표현의 자유’를 여실히 정립시킨 화가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태고의 신비를 화폭에 승화시켰고 그 누구도 시 도하지 못했던 이국적인 회화시(繪畵詩)를 상징적이고 영웅적으로 구사, 회화의 신화를 창조했다.


고갱은 파리 생활에 지쳤고 또 1888년 아를에서 고흐와 다투고 난 이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시골에서 그린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가 함께하려는 상징성이 있는 종교화이다. 이 작품은 1891년 4월 타히티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것이다.


특히 그의 인생과 신앙의 내면을 엿볼 수 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의 말씀처럼 고갱 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의지를 나타내는 자화상이라고 본다. 화면에 자화상은 건강한 체구에 그을린 얼굴,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매부리코, 커다 란 초록색 눈, U자 모양의 가벼운 턱수염과 짧은 콧수염을 하고 있다. 근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며, 또한 침착하고 사려 깊은 인간성에서 냉소적인 면도 함축되어 보인다. 그 배경에는 황색의 그리스도와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자화상이 담긴 항아리’ 도자기이다.


‘예술은 추상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열망하고 그 마음으로 자연에서 추상을 발견해야 한다.’ (고갱이 1888년 친구 에밀 수페네커에게 보낸 서신) 이 서신에 나 타난 자연에서 추상을 감미한 환상적인 작품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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