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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홍윤 Dec 16. 2022

성의 박탈

엘 그레코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요 19;24, 시 22;18)



1579년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가 그린 <성의 박탈>은 스페인 톨레도에서 첫 작품이자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오랜 수업을 거쳐서 제작한 엘 그레코 독자적 양식이 처음으로 나타난 걸작이다. 


화면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려는 장면이다.  이는 비잔틴 미술에 선례는 있지만, 서유럽 기독교 미술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주제이다. 전경 오른쪽에는 십자가에서 못 박힐 부분에 구멍을 뚫는 사람이 보이고, 이 모습을 보는 세 명의 마리아가 전경 왼쪽에 보인다.


화면 중앙의 예수는 그를 둘러싼 군인들에 의해 옷이 벗겨지고 조롱당하고 있으며, 이들의 모습은 예수의 옷을 갖기 위해 제비를 뽑는 성경의 기록을 연상시킨다. 


중앙 왼쪽 갑옷 입은 병사는 앞에서 일어난 일을 바라보며 관심을 예수 쪽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보고 ‘진실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말 한 로마 군인의 백 부장으로 추측된다. (마 27;54)  


예수 손의 밧줄은 처형장으로 가던 예수가 지쳐 십자가를 다른 사람이 지자 군인들이 예수를 밧줄에 묶어 끌고 갔다고 기록한 성 보나벤투라의 글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예수의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하늘 아버지를 향한 애절한 시선, 붉은 의상 등 십자가의 희생을 절실히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예수 뒤쪽의 창과 도끼를 든 군인들의 모습에서 비통한 형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걸작은 당시 주문자의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여 작가가 원하는 작품의 가격을 받지 못했다. 

엘 그레코는 화가로서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라는 강한 신념을 지녔고 주문자의 취향에 맞추기보다 예술적 자유와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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