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안젤리코
‘천사 가브리엘이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1;30-31) ’ 마리아가 이르되 주여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1;38)
이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가 그린 <수태고지>는 이탈리아 피렌체 성 마르코 수도원의 수도사 승실로 통하는 이층 입구 화랑에 1440-50년 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로서, 간결한 구성으로 경건한 정취를 풍기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면구성은 반원 아치와 기둥이 균형을 이루며 내부공간을 형성시킨 투시 도법에 의해서 건물 중앙 공간에 이상적인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배치로 되어있고, 건물 좌측 정원의 수초를 비롯한 이 모두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작품의 내용면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투시도이다. 원근법은 15세기 르네상스 회화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며, 이 화면에서 건물 아치형 내부공간까지 길이 있는 공간 감각을 실현한 기하학적이고 과학적인 투시 도법을 채택하고 있다.
둘째, 이상적인 인간성의 표현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양손을 가슴에 포개고 무릎을 굽히는 듯한 동작으로 진중히 성고(聖告)하는 모습과 마리아는 수줍은 듯이 앉아서 천명(天命)을 받으려는 자세이다. 이는 때 묻지 않은 고결한 이상형의 인간성을 나타낸 섬세한 심리적 표현과 적절한 공간구성, 그리고 인물과 사물과의 균형적인 배치는 프리 안젤리코의 깊은 신앙에서 우러나는 면밀한 배려일 것이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감각적인 자연이다. 정원의 풀과 꽃, 그리고 나무는 단순화되고 양식화되어있어, 오직 영혼의 신앙과 자연을 결부시켜 하나님을 찬양하 기에 필요한 감각적인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넷째, 신앙에 깊이 접근하려는 내면세계의 표현이다. 이 벽화는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어떠한 구성의 복잡성이나 색채에의 특별한 조화도 없다. 일반 신도들 보다도 수도사들을 위하여 그린 것이기 때문에 색채가 가라앉고 구성이 간소하며 주제가 명확하다. 외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신앙의 깊은 곳에 닿는 신앙고백- 믿음, 희생, 소망,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원리를 마음 깊이 생각하게 한다.
프리 안젤리코는 1387년 이탈리아 뷔요키오 데 므젤로에서 태어나 수도사로서 성실하였으며, 또 피렌체 화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성직자로서 겸허한 몸가짐을 잃지 않았다. 그를 ’ 천사와 같은 화가‘라고 하듯이 그는 천명을 수행하기에 최선을 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