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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Feb 08. 2022

Ep.2
'맨몸으로 링에 오르다'

광고기획자로 첫 발을 내딛다





주말이 되자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갔다. 유명 선수의 플레이를 보기 위한 갤러리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대회 갤러리 티켓 비용이 만만한 가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골프의 인기를 실감했고, 골프가 돈이 되는지 그때 알았다. 우리 브랜드 프로모션 부스에는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쌕 하나를 받으려고 2,30분씩 줄을 섰다. 당일 나가기로 정해놓은 기념품은 오전부터 동이 났다. 우리 외에도 많은 브랜드들의 부스에 사람이 넘쳐났다.


일요일 대회가 어느정도 마무리에 접어들자 대표는 커피 한 잔 하자며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둘째날 얘기한 포부에 자신의 철학까지 아름답게 담아내어 공식적인 ‘입사제안’을 했다. ‘몇 일 일하는것을 보니 알겠다’ 며 팀장이 얘기한 것보다 더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속마음을 차분하게 드러냈다. 팀장이 아주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했었나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적디적은 입사 예상 후보 중 한명이 나였고, 4일동안의 프로모션은 간이면접같은 시간이었다. ‘고민해 보겠다’는 아리송한 대답과 모션을 취했다. 그리고 2주 정도 지났을까. 대표의 전화에 회사 근처에서 또 한번 커피를 마셨고, 그렇게 넓은 강남 땅에 차지한 수 많은 광고회사 중, 작은 디지털 광고 에이전시에서 AE, 광고 기획자로 첫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근하기로 한 대망의 첫날부터 F&B 브랜드 미팅을 갔다. 명함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달랑 몸과 노트 하나만 가지고서 클라이언트와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다. 뷰가 좋은 회의실에서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 회의 내용을 녹음했다. 미팅이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오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샀고, 아직 오지 않은 노트북을 대신해 종이에 이래저래 그날의 아젠다를 정리했다. 첫날부터 광고주 미팅이라, 당연하게도 그 브랜드를 담당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PM이 되었다. 뜬금없는 F&B 브랜드, 갑작스런 PM. 그 때 여기 생활이 얼마나 다이나믹할지 촉이 왔었던 것 같다. '그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튿날 학동역 언저리 빌딩의 4층, 테라스가 있는 소형 사무실에 10시까지 출근했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는지, 도어락은 굳게 잠겨 있었다. 후배가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지난 프로모션에 썼던 물품이 너저분하게 널부러진 정리되지 않은 사무실에, 물티슈로 한번 슥 훑은 듯 비어있는 테이블 하나가 누가봐도 내 자리라는 것을 알렸다. 노트북은 아직도 오지 않았고, 이전에 있던 누군가가 사용한 작은 모니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회사는 대표와 내 동기인 팀장, 그리고 후배였던 사원, 나 이렇게 4명의 기획자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영세함은 두번째라 말하면 서운할 정도였다. 그 좁은 사무실에 공간을 어떻게 내었는지 같이 일하는 뷰티 브랜드 클라이언트 여성 두 분이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꾸벅 인사를 했고, 또 담당 PM이 될까봐 눈치도 조금 본 것 같다. 공간이 답답해 테라스로 나가 줄기차게 담배를 피웠다.


퀵으로 받은 노트북을 열고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사내 메일 계정을 만들고, 명함은 누가 만들어주는지 모르겠으나 주문을 했다고 누군가 말했다. 이것도 OT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OT도 간략하게 받았다. 말이 OT지 그냥 각개전투다. 필요한 것들은 왠만하면 알아서 찾았고, 너무 바빠 누구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우당탕탕 업무를 시작했고 메일 보내는 법도 몰라 내게 온 메일을 하나하나 참고했다. 첨부파일 없이 본문 텍스트만 달랑 보내, 보내기 취소를 몇 번이나 하면서 간신히 메일을 보냈다. 이게 뭐라고 처음 보낼 땐, 한 통에 30분 정도 걸렸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잘 담겼는지, 받는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고 의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간단한 요약은 있는지, 오타는 없는지 꼼꼼히 체크했다. 나에게 먼저 보내보고 검수까지 하면서 메일 보내는 법을 정립했다. 그리고는 그 메일로도 모자라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로 설명했다.


메일과 관련해선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후배가 2,30분 끙끙거려 쓴 메일을 보내고 한숨 돌리며 담배를 같이 피다가 느닷없이 담배를 버리고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첨부파일을 깜빡했다며. 급하게 처리하고 나와서 얘기하다 다시 또 뛰어들어갔다. 담당하는 클라이언트 수신자를 빼먹었다며. 역시나 처리하고 나오다가 또 뛰어들어갔다. 최종 파일이 아닌 이전 파일로 첨부를 했다며. 아침 댓바람부터 클라이언트에게 3연타석 메일을 뿌렸던 그는 전화로 연신 해명하기 바빴고, 수습하는 그의 얼굴에선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 뒤로 대표가 들어오더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일하냐며’ 겨우 진정된 그에게 분노를 쏟았다. 그 정도로 혼낼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나보다. 아직도 그에게 악몽같은 하루로 기억될거다. 독한 예방주사를 맞았기에 후배는 그 뒤로 메일과 관련된 실수는 하지 않았다.


클라이언트와의 메일 및 메신져 커뮤니케이션, 진행하고 있는 업무의 팀원 공유, 기획서 초안 만들기, 실행 아이디어 디벨롭, 그 날의 업무 to do list 정리 등 업무 관련 전반 사항을 나만의 방식으로 하나씩 빌드업 해 나갔다. 모든게 처음인 ‘신삥'의 자세로 좋은 것은 흡수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빠르게 버리면서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은 마음과 잘 버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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