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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Feb 11. 2022

Ep.3
'던지기의 향연'

니 일도 내 일, 내 일도 내 일





입사 두 세달이 지났을까. 대리였던 그는 뜬금없이 팀장을 달았다. 직급이 올라가자마자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담당 브랜드의 업무를 조금씩 넘겼다. 이른바 ‘던진다’로 표현하는데, 말 그대로 소소한 업무까지 던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기가 너무 많은 업무를 담당했다고. 이해는 한다. 두 세명이서 일곱, 여덟개 가량의 클라이언트 업무를 담당했으니 바빴겠지. 철학을 공유했던 대표는 뭘 하는지 매번 오후 두 세시에 출근을 했고 나머지 핸들링은 모두 팀장이 하곤 했다. 중요한 확인 사항이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과정에서 대표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그 시간만큼 모든 일은 스톱되고 딜레이 되었다.


이런 시스템으로 일이 돌아가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킥오프 미팅을 하고, 제안을 하고, 수정을 하고, 클라이언트 임원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실행을 하고, 결과를 보고하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거짓말같이 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건지. 그 톱니바퀴 중 하나가 빠지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가끔 보았고 충분히 느꼈다. 이가 없어 잇몸으로 때우는데 그 잇몸까지 무너지는것 같은 느낌.


내가 맡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던지는 일들이 버겁기 시작했다. 적당히 던져대야지 받는데 어느 순간부터 본인은 말 같지 않은 핑계로 먼저 퇴근하고, 사원끼리 남아서 일 하는 날은 잦아졌다.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주기까지, 대표에게 컨펌받기까지, 그 전에 팀장에게 보고해야 했는데 날밤을 새어 준비한 아이디어는 팀장의 몇 마디에 모두 리셋되었다.


‘이건 대표가 해야되는 업무아냐?’

라는 생각이 들만큼 팀장의 대표놀이는 선을 넘고 있었고, 대표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만큼 돌아오지 못할 정도까지 넘어갔다 오는 듯 했다.


‘이거 아닌거 같은데....'

산 하나를 넘을때마다 속이 쓰리고 몸은 배배 꼬였다. 줄이려던 담배는 어느새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고, 손가락 근처까지 불이 타들어가도 뜨겁지 않게 느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작은 회사에서 니 일, 내 일을 명확히 구분하기도 어렵고 어떤 경우에는 게릴라 부대처럼 모두가 뭉쳐 하나의 일을 밀어내며 처리하기도 하고, 또 흩어져 각자 맡은 업무를 처리하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큰 규모가 움직이는 것에 비해 유동적이고 가볍다는 것. 규모가 너무 작은 탓이었나. 니 일도 내 일 내 일도 내 일, 팀장이 던지는 일을 하며 목구멍까지 나오는 불만을 꾹 밀어넣고 허겁지겁 처리했다. 잠깐 제쳐둔 내 업무에 그가 하던 업무까지 받고, 언제나 부족한 시간에 데드라인은 다가오니 야근은 기본, 새벽 택시를 타야만 집에 갈 수 있는 요청한 적 없던 편리한 복지가 싹트고 있었다.


팀장이 던지는 일이라는것도 족족 말이 안 통하는 클라이언트나 협력사의 커뮤니케이션 위주였다.

“이건 이렇고요, 그래서 이렇게 진행되는 겁니다”

라고 말하며 몇 시간 전에도 설명했던 것을 반복하고

“신경 써서 좀 만들어주세요. 기한은 혹시 내일 저녁까지 되나요? 클라이언트가 모레 아침에 확인하고 싶다고 하네요”

라며 같이 일하는 협력사분들까지 집에 못 가게 만들었다. 경력 20년차의 디자이너에게 밤새도록 일을 시키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으나,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합리화해야만 했으니까.


쥐어짜고 그것도 모자라 메일, 전화로 두드려 팬다. 아쉽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연락들은 오롯이 내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테라스에서 담배피며 전화로만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목 울대까지 욕지꺼리가 차올랐다. 그야말로 ‘아가리로만 일하는’ 팀장은 연차별로 맡아야 하는 업무, 다른 광고회사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응당 이렇게 돌아가는게 업계의 룰’ 이라고 말했다. 설득력도 없고, 설득이 되지도 않는 말은 하면 할수록 한 귀로 들어갔다가 반대편 귀로 모조리 빠져나갔다.

'적당히 하세요....’


오전 10시 녹초처럼 축처진 몸을 대중교통에 겨우 맡기면서 출근하고, 업무시간 내내 클라이언트와 연락하고, 중간중간 기깔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가 퇴근한 저녁이 되서야 기획서를 정리하고, 협력사에 요청을 하고, 요청을 이해 못하면 직접 만나 설명을 하고.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지면 소화도 안되는 저녁을 어거지로 뱃속에 밀어넣고, 담배를 피고, 커피를 마시고, 에너지드링크도 마시고.

고양이도 지나다니지 않을 스산한 새벽이 되면 사무실 아래에 기다렸다는 듯 온 택시에 몸을 구겨넣었다.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120km 속도로 올림픽대로를 질주하던 택시 안에서 잔상처럼 지나가는 도시를 보며 생각했다.

‘내 시간은 왜,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건데....존나 재미없네 이거’


쳇바퀴 돌아가는 회사원의 일상에 새벽까지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매일 때를 묻혀 집으로 가져왔고, 그 생활에 빠르게 젖어들었다. 그 쳇바퀴에서 내려올때마다, 잠시 눈 감았다 떠 집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내릴때마다,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헛구역질을 몇번이나 했다. 썩은 음식을 먹고 토한 것 같은 쓴 맛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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