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다. 이 자유는 새로운 연결 가능성에 뿌리내린다. 우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을 때 더 많이 연결될 수 있다.
인문 철학 『은둔기계』, 김홍중
올해의 키워드로 번민과 고독을 택한다. 내가 내린 선택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져 내렸고, 흘러내린 것들을 어찌할 바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추스르지 못하고 외면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멀어지면서 마침내 나는 고독의 언저리에 닿을 수 있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사람이 그리울 때 우리는 흔히 외롭다고 하는데 그런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다. 비로소 원하는 고독이라 반가웠다. 무겁든 가볍든 혼자 짊어지고 가려하는 내 성격상 삶에 어느 정도의 고독은 있어야 함을 강요한다. 비로소 옳은 방향으로 발길을 디디고 있다 느낀다.
자유는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동시에 숙명 같은 단어다. 스스로 그러함을 원칙으로 살아왔다. 인생은 오직 자기만이 살아갈 수 있기에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다. 하여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나아가야만 한다는 철칙 같은 신념은 점점 더 두터워진다. 언제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갈 수 있으려면 가벼워야 함은 물론이다. 우주선의 추진 중 연료를 다 소진하고서 탱크를 분리하는 것처럼. 핵심은 가장 끝에 달려 있다. 보내고자 하는 것을 목표에 도달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가볍게 살자는 마음가짐은 욕망에서 쉽게 멀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게는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이 없다 해도 무방하다.
힘을 빼고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추는 것은 영원한 숙제다. 집단에서 주는 소속감은 곧 안정을 뜻한다. 단단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내부에 것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만든다. 의도적으로 안정과도 거리도 두게 된다. 내게 ‘자유’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을 뜻한다. 일례로 회사 같은 이익집단에서 지속되는 커리어를 쌓는 방식을 거부하면서. 회사를 벗어나서도, 집단을 벗어나서도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이동해도 살아갈 수 있는 자생능력이 필요하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형을 우리는 노마드라 부른다. 유목민이라는 원어적 뜻도 가진다. 두 개 다 욕심나는 타이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