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생각] 38. 생의 감각, 몸의 감각

by 분더카머


오늘의 문장

유목은 내가 신성하게 여기는 생의 감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몸의 감각을 소중히 여기는 문명이에요. 우리는 유목적인 정서를 상실했어요. 내가 보기엔 문명의 타락인데 그걸 문명의 발전이라고 해요. 생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각은 매우 건강하고 중요한 거예요.

김훈 인터뷰,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칼럼


얼마 전 김훈 작가의 오래된 인터뷰를 정리했다. 작가는 젊었을 때부터 늙은 척을 했다며 인터뷰 내내 껄껄 웃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정말 늙음에 도달하니 흐리멍덩해진다고 말한다. 젊을 적 기필코 사수했던 자의식의 성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게 보인다며 그동안 삶을 헛살았다 탄식한다. 단단하게 쌓인 자신의 존재를 감싸려 하기보다 허물어야 진정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를 통해 인간 존재를 가늠하게 된다. 살아보지 못한 세월에 대한 그의 조언이 애틋하고 고맙다. 점점 그의 말은 남은 세대에 전하는 유언같이 들린다. 생에 한번 스치지 못했지만 그는 내게 몇 안 되는 선생 중 한 명이다.


작중에서 그가 펼친 글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무아지경의 상태에 도달한다. 텍스트를 읽음으로 구체적인 삶에 가닿는다. 노인네의 신통한 능력에 매번 감탄만 하게 된다. 본인을 ‘길들여지지 않는 인간’으로 표현한 글에 대해 자신은 마구간의 말이라고 정정한다. 그래서일까 작품에 유독 말이 자주 나온다. 지붕 없이 눈과 비와 별빛, 달빛을 받으며 노숙하는 말은 유목의 상징. 선생은 유목을 신성하게 여기는 삶의 감각,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몸의 감각을 소중히 여기는 문명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유목적 정서를 어느 순간 상실했음을 일깨운다. 타락인데도 발전이라고 한다며 혀를 찬다. 또 생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각은 매우 건강하고 중요한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가끔 자연에서 텐트를 치고 잘 때면 아늑하게나마 온몸이 열리는 기분을 느끼는데, 그것이 유목의 감각일까 가늠할 뿐이다. 올해는 선생이 강조한 생의 감각, 몸의 감각을 느껴보는 해로 정해볼까 한다. 어느덧 초로의 나이를 훌쩍 넘어 이제 선생의 시간은 말단에 닿으려 한다. 흐르는 세월이 야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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