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허무감이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의 급격한 퇴조와 전위에 대한 반작용이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몰두하고 사랑했던 신념과 인식의 체계가 와해되고 소진되었을 때 나타난다.
『미시마의 도쿄』, 양선형
양선형 작가의 <미시마의 도쿄>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작가가 친한 벗의 지인이고 나와도 구면인데 그러한 사심을 제하고 봐도 구성에서도, 내용에서도 호평을 남길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할복자살을 한 소설가라고만 알고 있던, 사진으로 강렬한 생김새를 기억하고 있던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세계를 자세하고도 넓게 그리고 쉽게 안내해 준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전쟁에 가까워지던 본국의 변화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생을 경험한다. 전쟁에서 패배한 후 과거 전통의 가치는 힘을 잃어버리고 소시민의,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무력한 분위기가 팽배해지자, 강한 허무감을 느끼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구국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강권한다. 그러면서 소설가에서 극우 정치가로 또 하나의 자아를 분리시켜 살아간다. 삶의 종반에서 자신을 희생해 일본에 경각심을 심어준다는 일념 하에 할복자살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의 선택과 결말에서 큰 허무감을 느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박해일)의 인상 깊은 대사다. 심증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수사를 통해 송서래(탕웨이) 남편의 죽음이 자살이라 결론 내렸으나, 시간이 지나 송서래가 진범임을 해준은 알게 된다. 사랑에 눈이 멀어 치밀한 수사를 하지 못했고, 동료 형사 수완(고경표)의 의심도 멀리했던 해준은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 신념과 품위를 잃게 된다. 그의 자세를 꼿꼿하게 만들었던 자부심이 손상되자 해준은 더 흐트러지게 된다. 비금봉 정상에 누워 ‘마침내’ 범인을 알게 된 해준의 표정이 그가 모아둔 사진 속 죽은 사람들의 얼굴과 진배없이 느껴졌다. 육체만 남아있을 뿐 정신은 모두 무너진 자로 인식되었을 정도로.
조국 일본이 와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 미시마와, 신념만으로 살아왔던 해준의 소진은 허무감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 준다. 쓰러짐과 붕괴는 궤를 같이 하지 않을까. 체계의 와해, 허무감, 퇴조, 붕괴. 내게 두 인물은 깊게 연결된 것 같이 느껴진다. 지면을 할애해 <미시마의 도쿄>, <헤어질 결심>에 대해 사유해 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