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자신의 생명을 끝마침으로써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 벌목된 나무가 목재로 되듯이 말이다.
『나무』, 고다 아야
『나무』를 읽으면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끝이 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인데, 내가 느끼는 소중함의 다른 발현이고, 예술을 극찬하는 방식 중 하나다. 손가락에 꼽을 만큼의 작품은 내게 이렇게 저마다의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책은 의도치 않게 서서히 페이지가 넘어가는게 그 신호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에세이는 몇 년 동안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몇 번이나 좋아하는 문장들을 들춰보는데, 『나무』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읽은 이야기를 아껴서 또 읽을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는 모두 자연에서 길어온다. 자연은 때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전국 각지의 산림과 초목을 제때 보러 가야 하고, 지역의 이동이나 산을 올라야 하기에 자연스레 공수가 든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본인 거동의 불편함을 미안해하며,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 운전은 기본이고 부축을 받아 이동하고, 높은 곳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도 올라간다. ‘저렇게 해서라도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그녀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진다.
나무를 보러 가서도 가만 있질 않는다. 전문가와 관리인들에게 수시로 질문하고 부탁한다.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해 꽤 무리한 부탁도 서슴지 않는다. 부탁 받는 이들은 난감해하면서도 노작가의 진심, 열정에 감복해 부탁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 역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여러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 읽고서 책을 덮으니 무언가 헛헛함이 고개를 든다. 나무를 베어 좋은 목재를 만들듯, 수고로움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였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편한 몸을 움직여 얻은 것들을 펜을 들어 가볍게 엮어낸다. 그리하여 첫 글을 쓴지 13년 6개월 만에 그의 유작이 세상 빛을 보게 된다. 편하게 책상에 앉아 나무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해 준 작가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종종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여러가지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