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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카머 Apr 12. 2022

Ep.11 믿지 못할 놈, 믿을 놈 구별하기

영상제작의 암과 명





토익 서비스와 앱을 알리기 위해 브랜드에서는 광고영상을 제작하고 싶어했다. 초기에는 빅모델 없이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상황을 연출하여 3-4편 정도로 버전을 나누었다. 영상 제작에는 또 그에 맞는 전문가가 필요한 법. 여러 제작사를 알아보던 중, 팀장의 추천으로 학교 동문 선배가 운영하는 프로덕션에 아이디어와 촬영안을 의뢰했다. 동문 좋다는게 무엇인가, 그들도 일감이 들어와 좋고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으니 윈윈이라 생각했다. 뒷일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모른채.

사전미팅에서 브랜드가 당면한 과제와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특수성, 기존 토익시장 브랜드와의 차별성 등을 두시간이나 입 아프게 이야기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웬 걸. 전문가라는 그들이 가져온 아이디어와 영상안은 막말로 학교과제보다 못한 정도였다. 브랜드의 이름이 빠지면, 토익이라는 상황이 빠지면 어느 교육 브랜드 광고로 내보내도 될 정도로 차별성과 아이덴티티는 찾아볼 수 없는 무색무취의 결과물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해졌다. 대행사가 이해 못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준비한 것에 포장을 잘 해서 보여줘야 하는게 기획자의 업무라면, 포장지에 손도 대기 싫을 정도의 아이디어고, 영상안이었다.

동문의 감독과 기획실장의 그 아이디어에, 그 상황에 보기좋게 발등을 찍히고 말았다. 일 잘한다고 동문을 추천했던 팀장의 얼굴은 나보다 더 화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몇 번의 피드백을 주어도 그들은 감조차 찾지 못 했다. 감이 있을거라, 센스가 있을거라 믿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국내 탑 통신사의 바이럴 영상은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만들었을까. 결국 그 영상안은 기획자인 우리가 모두 수정하고, 거의 다시 만들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로 촬영하면 좋지 않냐고 제안했다. 자존심이라도 상했어야 했을 그들은 오히려 얼토당토 않는 예산 견적을 내밀었다. 그 영상이 잘 나왔을까? 전혀.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는지 모르는 그들이 좋은 결과물을 가져올리는 만무했다. 참신한 아이디어, 통찰력 있는 새로운 시선, 기억에 남을만한 유머, 그 중 하나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보고 배운건 돈으로 장난치는 도둑질 밖에 없는 그들과는 결국 틀어졌고, 손절했다. 학교 동문이라는 그들은 가까이에 있는 허울만 가득한 허수아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귀중한 한 번의 시간을 그렇게 날리고, 그 다음 시즌은 영상을 제대로 만드는, 현업에서 인정하는 프로덕션을 골라 손을 잡았다. 이번엔 기필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서. 몇몇 히트 친 광고들을 제작한 제작사도 아이디어 쪽에서는 쉽게 감을 잡지 못 했다. 그만큼 브랜드 서비스가 유니크하고 독특하긴 했으니까. 허나 이들은 유명모델을 섭외하고 그 모델의 이미지와 유머있는 영상 아이디어를 잘 붙여서 우리를 설득해냈다. 그 전 아마추어들과는 다르게. 감독은 B급, 유머를 보여주는 광고 카테고리에서 꽤나 유명한 분이었고, 명성에 맞게 영상안을 가지고 신나게도 풀어내었다. 촬영 내내 모니터를 보는 그는 행복해 보였고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신명나게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곱 씹었다. 결과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었다. 담당자가 자기 브랜드의 영상을 만들 듯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우리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가 다 느낄 정도였다.

3가지 버전 영상의 핵심 메세지를 빠르게 캐치하여 그것을 잘 담아내었고, 작위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흐름을 연결해 나간다는 것은 영상이 완성되지도 않은 촬영 단계부터 느껴졌다. 컷과컷을 어떻게 붙일 지, 모델의 연기와 대사는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가 이미 감독의 머리속에 다 들어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 있는 OK컷을 볼때마다 우리와 브랜드 담당자는 모두 크게 이의없이 동의했다. 사전에 기획한, 약속한 영상안대로 촬영이 진행된다는 것을 제작사는 공유하여 주었고, 그것을 확인시켜주며 일을 안정적으로 진행했다. 제작사 역시 순항하는 배였고 우리는 선미에 앉아 부드럽게, 여유롭게 항해를 함께 해 나갔다. 추가로 필요한 컷이나 모델의 애드립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 정도만 감독에게 요청하며 항해를 마쳤다.

제작사에서 제안한 모델 유병재는 영상안과 찰떡같이 맞아 떨어졌다. 희극을 해 본,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해 본 연기자가 얼마나 콘티를 잘 이해하는지에 대해선 더 말을 붙일게 없었다. 사전에 공유한 콘티를 숙지했는지 그 역시 완벽하게 흐름을 알고 있었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연기에 자신이 생각해 낸 애드립을 감독에게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본인 역시 컨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라 그런지 어느 부분에서 힘을 줘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예쁘고 잘 생기기기만 한 이미지 모델이 아닌 자신의 장점을 확실히 알고 있는 그의 행보가 앞으로 더 기대되기도 했다.

사전기획과 영상안, 촬영까지 모두 생각한대로 나온 결과물을 받아들고서는 제작비와 모델료 등 마케팅 비용 결산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시즌 캠페인 중 하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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