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기계 앞의 망부석

by 분더카머

cover 조대성(한국)

2002년생

세계 랭킹 22위

전형 : 왼손, 셰이크핸드 올라운더

24년 파리 올림픽 탁구 국가대표

2023 더반 세계 선수권 남자복식 동메달

2022 청두 세계 선수권 단체전 동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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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탁구 성장기

13구


탁구를 시작한 지 2주 채로 접어든다. 일이 오후 근무로 바뀌면서 2주 동안은 레슨을 받지 못하는 상황, 더 이상 레슨 진도를 나갈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이제껏 배운 것을 반복해 익히는 것뿐이다. 돌아올 레슨에서 코치님을 놀래켜 줄 말도 안 되는 마음을 가지고, 기본기를 집요하게 파고들 마음으로 오전 일찍 탁구장으로 향한다. 구장 오픈은 열시인데, 관장님께 비밀번호를 물어 9시 반 제일 먼저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있다. 공 소리 하나 없는 적막한 탁구장에 불을 켜고 청소기로 바닥을 정리하기도 한다. 내 집 청소도 이렇게는 안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기 짝이 없다. 바닥엔 뜯겨진 러버 조각들도 종종 보인다. 얼마나 많은 이가 어제도 여기서 땀을 흘렸을까.

가볍게 몸을 풀어 주고 바로 로봇탁구 기계를 마주한다. 일찍 오는 이유는 로봇탁구를 사용하기 위함인데, 탁구 기계는 테이블에 낙구되는 정확한 위치를 조정할 수 있고 공을 얼마나 빠르게 보낼지 빈도수 조정이 가능하다. 탁구인이 ‘민볼’이라고 부르는, 하회전이 걸리지 않은 상회전 볼에서 커트가 먹은 하회전볼까지 조정을 쉽게 할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연습하고 싶은, 잘 처리하지 못하는 볼에 대한 연습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초보자에겐 코치님 다음으로 가장 의지하는 것이기도 하고, 초보자가 가장 많이 붙어 있는 시간이 로봇기계 앞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이 로봇기계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메모장에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지 미리 적어둔 목록을 연다. 포핸드 스트로크와 백핸드 쇼트를 가장 먼저 100개씩 쳐본다. 코치님이 설명해 준 대로 내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팔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본다. 가장 편한 자세에서 올바른 자세가 나온다고 하였던가. 몸과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다음은 스텝을 가미한 포핸드 연속 타구. 그리곤 백핸드를 치고 스텝 이동해 포핸드를 친다. 이른바 화백 전환. 이렇게 묶어서 한 세트로 치고 3세트 정도 하면 그래도 오늘은 연습을 많이 했다 정도의 느낌이 온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기계를 치고 있는데 뒤에서 한참을 지켜보는 인기척을 느꼈다. 나이 지긋한 분이 들어오더니 “나 여기 주인인데요…잠시만요” 하고 나를 부른다. 관장님 말고 주인분이 또 있었나. “무슨 일이시죠?” 물었더니 내가 로봇기계를 너무 오래 사용해 다른 분들이 사용 못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더불어 다른 분들도 사용할 수 있게, 융통성 있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흘렀다. 나처럼 로봇기계를 사용하고자 하는 이가 많을 거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초보는 사람보다 기계와 치는 것을 선호할 텐데, 구장에 초보가 어디 나 하나뿐이랴. 기계뿐만 아니라 5대 있는 메인 탁구대도 마찬가지일 터. 피크시간대에 이르면 간혹 어떤 이들이 한 테이블을 계속 돌아가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앉아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탁구를 즐겁게 치고 있지 못하는 회원들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탁구장엔 다른 회원분들도 이용할 수 있는 배려를 미덕으로 삼는 규칙들이 있다. 대체로 탁구대당 2-3게임을 하고 자리를 비켜주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누구나 잘 치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 텐데, ‘너’와 ‘나’의 생각의 기준이 모두 다르기에 누군가는 맘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의 경우 그 소통 방식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내게 와서 “다음에 저 치고 싶은데, 끝나면 말해주세요.”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주인분께 가서 그렇게 말을 해버리니 나는 절대 안 비켜줄 사람, 그분의 말 그대로 융통성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도 ‘말을 안 하니 누가 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지 않나. 내게 말하면 끝나고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전했다.

그 후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 역시 아침에 나와 로봇을 치고 있는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중년 여성분이 오시길래 “10분만 더 치고 말씀드릴게요.” 하였더니 “10분이요?” 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며, 옆에 같이 온 남편분과 두 분이서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셨다. 근데 그 표정이 마치 자기 것을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이라 나조차도 할 말이 없었다. 그분들도 일찍 와서 치는 나를 어느 정도 배려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일이 있은 다음날 오전 기계를 치고 있는데 코치가 종이에 ‘회원분들이 많이 사용하니 15분씩 사용을 권장합니다’라는 글을 종이에 써 로봇기계 네트에 붙이는 것을 보고는 말 그대로 뜨악하고 말았다. 그 멘트를 내 옆에서 쓰면서 오래된 회원과 코치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누가 계속 로봇기계만 잡고 치나 봐요” “아! 나 초보 때는 2시간씩 치고 그랬어” “그때는 회원이 정말 없을 때잖아요.” 웃으면서 대화를 이었다. 내 귀에 곧이곧대로 들어오는 그 이야기에 나는 하나도 웃을 수 없었다는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으로도 이어졌다.

탁구장은 남녀노소 모든 이가 모이는 하나의 작은 사회가 아니던가. 나부터 타인에게 배려를 회원들도 누군가를 위해 배려할 것을, 자신은 배려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배려를 바라지는 말 것을 생각한다. 가끔 예의가 어긋나거나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모두가 즐겁게 운동하러 모인 곳 아니던가. 탁구공같이 둥글게 둥글게. 우리는 또 테이블에서 땀 흘리며 공으로 대화를 할 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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