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탁구의 묘미라는 것을

by 분더카머

cover 펠릭스 르브론(프랑스)

2006년생

세계 랭킹 4위

전형 : 오른손 중국식 펜홀더

24년 파리올림픽 남자 단식, 단체전 동메달

24년 부산세계선수권 남자 단체전 은메달

23년 크라쿠프 유러피언게임 남자 단식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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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탁구 성장기

26구


우리 구장엔 월요일 오전 11시부터 회원과 비회원이 참가하는 자체 리그전이 펼쳐진다. 약 30명 인원이 모여 진행하는 소란스런 리그전이 끝나면 조금은 한가할 거란 생각에 6시쯤 갔더니 회원들로 구장은 복작복작했다. 이미 테이블엔 점수판을 넘기며 대기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 탁구를 치는데도 웨이팅을 걸어야 하는 걸까, 그 뒤로도 퇴근하고 구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이 문을 열고 밀려 들어온다.

평소 월요일엔 이렇게 사람이 많진 않은데 전 주 추석 연휴를 보내고서 다들 몸이 근질근질했나 보다. 구장의 피크 타임인 이때 실력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코치 두 분이 레슨을 하고 있기에, 레슨실의 로봇 탁구를 칠 수도 없는 상황. 점수판이라도 넘기면서 탁구대에 들어가야 하지만 하수 중의 하수, 갓 입문한 내가 들어갈 틈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구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져 단식으로 진행되던 테이블엔 모두 복식으로 네 사람씩 붙었고, 부관장이 슬쩍 보더니 ‘끝 쪽 테이블에서 복식 치면 칠만 할 거예요’라고 힌트를 준다. 그제야 나에게도 스리슬쩍 라켓을 잡을 기회가 온다. 처음 보던 회원분들과 인사를 하고 팀을 맞추어 공을 나눈다. 미천한 실력은 상수와 팀을 이루니 살짝 물 타지기도 한다.

“저 이제 두 달 차입니다” 팀원에게 말하고 복식을 치는데 상대팀 중년 여성분이 “진짜 맞아요? 아닌 거 같은데, 너무 잘 치는데”라고 하여 조금 당황했다. 하도 크게 얘기하니 주변 테이블에서도 시선이 집중되었다. 심판을 보면서도 나를 유심히 보더니 “진짜 두 달 차라면, 당신은 탁구 천재야. 너무 잘 친다”라고 칭찬해 주신다. 그래봤자 얼마나 잘 치겠냐마는. 여기까지만 해도 됐을 텐데, 내 코치님에게 달려가 ‘내 구력이 얼마나 되는지’ 대놓고 물어본다. “다른 데서 치다가 온 거 아냐?” 코치님의 초보 증언에도 머리를 갸우뚱한다. 코치님은 “처음부터 나한테 배워서 그래.”라며 또 여성분의 말을 재치 있게 받아친다. 나를 두고 여러 회원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되려 가만있는 내 얼굴만 붉어진다.

구장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까, 회원들과 공을 나누는 게 재밌었기 때문일까, 이날 11시까지 탁구만 쳐댔다. 부관장은 바글바글한 회원들을 보며 이번 달 총 회원수가 여태 가장 많은데 ‘탁구장을 확장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레슨실을 제외하면 가용할 수 있는 탁구대는 5대, 회원이 100명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당장 해결할 순 없으니 조금씩 양보하며 옹기종기 붙어서 함께 공을 나눌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져오는 활기참은 어느새 긍정의 에너지로 바뀌어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파된다. 이날 구장 분위기는 정말 후끈했고 모두가 그 열기에 동참했다고 느꼈다. 저마다 작은 공 하나를 두고 같이 땀 흘리며 몰두하는 것. 이게 탁구의 묘미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 날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탁구를 배우기 시작한 고등학생 친구가 있었다. 저녁때 랠리를 몇 번 나누다 근무 때문에 2주간 만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그 사이 이 친구는 구장의 모든 사람들과 친해져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구장 내 리그전에 3번이나 참가했단다. ‘2달도 안 됐는데 벌써 구장 내 리그전을 나간다고? 나가면 게임이 되는 건가’ 싶었다. 나의 경우 기본기를 잡고서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에, 랠리 후 게임을 권하는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거절의 의사도 내비쳤었다. 정파가 아닌 사파로 탁구를 친다거나, 이상한 자세로 탁구를 치는 사람과의 연습을 애써 피하기도 했다.

“이기기는커녕 한 세트도 못 땄어요” 하고 긁적이는 그와 랠리를 하다 가볍게 게임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 친구, 2주 전 그 친구가 아니다. 코치님에게 배웠다며 5개 중 1개 들어올까 말까 한 공을 세게도 쳐댄다. 처음엔 ‘이게 뭐지?’하다 스매싱이라고 해야 할지, 드라이브라고 해야 할지 정의하기 어려운 공을 뿌렸는데 제대로 맞은 공이 테이블에 들어오니 아예 손을 대지도 못했다. 나만 열심히 했겠나. 수험생인 그 친구 역시 매일 탁구를 쳤고, 레슨도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리그전에 나간 몇 번의 경험이 단기간 그의 실력에 큰 점프를 가져오게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부관장이 다가와 나 역시 구장 내 리그전에 참여해 볼 것을 권한다. “매일 나와서 연습하는 거 봤고, 로봇이랑도 치고 하는 것도 다 봤어요. 근데 게임하고 지면서 배워야 실력이 더 빨리 늘어요.”라고 언질 한다. 어차피 탁구는 게임에서 점수를 먼저 내야 이기는 운동이 아니던가. 승부를 가려야 하는 룰에서 그것을 피하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리그전에 나도 나가봐야겠다’며 마음속 출사표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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