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에 대한 양가감정 (2)

by 분더카머

이전 이야기




본격 탁구 성장기

34구


커트볼 드라이브의 순서가 되어 잠깐의 틈을 내어 어깨를 돌리면서 근육을 풀어주고, 앉았다 일어나며 다리를 풀어준다. 그 틈에 코치님도 볼박스에 볼을 채우면서 숨을 고른다. 말하지 않아도 이 동작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가장 어려운 고비가 바로 이 단계라 제대로 마스터해서 건너뛰고 싶은 마음은 큰데 코치님의 하회전 볼을 애써 올리지만 공은 쉽게 네트를 넘지 못한다. 공이 네트에 걸리니 자신감은 바닥을 찍고, 스윙은 더 소심해져 앞으로 나가질 못한다.


“공을 때리는 소리와 회전을 거는 소리가 다르지?” 코치님이 하회전 건 공은 눈으로 보아도 강한 회전이 걸려 넘어온다. 그렇게 넘어온 공은 라켓을 대기만 해도 튕겨져 나간다. 세게 치는 게, 빨리 치는 게 아니라 회전으로 상대의 리턴을 어렵게 만드는 게 커트볼 드라이브의 목적. 공이 정점에서 떨어질 때 쳐야 하는데 타구하는 타이밍이 빠르니 제대로 회전이 걸리지 않아 네트를 못 넘기고, 네트를 넘기면 으레 공은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 역시 상대의 커트를 커트로 넘기면 이 단계에 그렇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지만, 공격하지 않는 탁구를 치는 몇몇 회원들을 보고서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주도적인,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더한다. 매번 다짐만 하고 크게 나아지는 게 없어 마음만 무거울 뿐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억지로 커트볼 드라이브를 넘기니 백핸드로 커트를 한번 하고 이어서 포핸드로 커트볼을 넘기는 연결을 한다. 이 역시 게임에서 자연스레 나올 공의 움직임을 미리 알려주는 것일 거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오른발을 테이블 쪽으로 붙이며 백핸드 커트를 하고선 다시 발을 움직여 돌아온 후 커트볼 드라이브 동작을 따라가야 하는데, 공은 이미 내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에도 내 다리는 하염없이 느리다. ‘운동신경이 좋다는 걸 자각하고 있으니 웬만한 공은 다 커버할 수 있다는’ 일종의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 느리게 준비해도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한다. 무언가 쉽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앞을 막는 벽을 느낄 때 대체로 난 정공법의 해결 방법보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었다. 아니면 요령이나 잔꾀를 부리거나. 이번엔 꼭 부딪히면서 돌파해 보리라.


그다음으론 백핸드 커트 후 백 사이드에서 돌아서서 커트볼 드라이브를 친다. 포어 사이드 커트볼은 몸을 돌리기만 하면 그 앞에 타구 할 공간이 나지만, 백사이드는 또 얘기가 다르다. 그 자리에서 테이블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서 내 앞에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데 이렇게 돌아도 어디서 다리를 고정하고, 공을 쳐내야 하는 위치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코치님이 직접 준비 동작과 도는 스텝, 돌아서 쳐야 하는 공간을 알려주지만 이해는 되어도 쉽게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몸을 움직이면서 자세를 함께 내리고 공도 맞추어야 하니 아마 가장 마지막 정복할 커트볼 드라이브 동작이 아닐까 한다. ‘공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다린 후 칠 것’. ‘확실한 동작 후에 공에 임팩트를 줄 것’ 내 몸에 각인하고 싶은 게 한 둘이 아니다.


너덜거리는 하체를 겨우 부여잡고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한다. 바로 내 뒤로 코치님과 오픈 3부 젊은 친구의 레슨이 이어지는데, 레슨실이 아닌 넓은 메인 탁구대로 나와 레슨을 받는다. 가까운 자리로 옮겨 앉아 유심히 그 친구가 치는 자세와 동작을 눈으로 담는다. 내 레슨과 다르게 코치님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본인의 펜홀더 라켓을 꺼내 공을 받는다. 대회 이후로 자기 라켓을 꺼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포핸드 드라이브와 백핸드 드라이브 2개씩 번갈아가며 몸을 풀면서 시작한다. 필요 없는 동작 없이 부드럽게 임팩트가 전달되니 공은 이쁜 포물선을 그리며 테이블에 떨어진다. 어느 정도 몸을 풀면 서브 후 불규칙 랠리를 하거나, 도중에 잘 안 되는 기술이나 연결을 집중적으로 갈고닦는다. 그러고는 마무리로 멀찌감치 떨어져 중진 혹은 후진에서 서로 맞드라이브를 걸고서는 끝이 난다. 어렸을 적 선수로 시작해 10년이 넘게 탁구를 친 이 친구의 실력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정도다. 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오랜 기간 배우고 탁구를 치면 언젠가 코치님이 펜홀더 라켓을 꺼내 메인 탁구대에서 게임하듯 레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먼 목표를 또 하나 새긴다. 이 젊은 친구에게는 가볍게 랠리라도 자주 부탁해야겠다 싶다.

레슨 중 포핸드 랠리를 하고 있을 때 관장님과 부관장님이 들어와 코치님과 잡담을 나누었다. 곧 있을 하반기 마포구 주관 탁구 대회 참가에 대한 이야기로 꽤 대화가 오갔다. 탁구장에서 누가 나가냐는 코치님의 물음에 회원 몇 분의 이름이 열거되다 뜬금없이 내 이름이 나온다. 모두들 박장대소한다. “얘는 다음 영등포구 단식 우승이 목표야”라며 생각지도 못한 목표를 던지는 코치님. 짧은 시간 동안 날 가르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문득 궁금했다.

보통 구청 주관 대회에선 1년 미만 구력의 초보 탁구인이 참가할 수 있는 그룹이 ‘희망부’나 ‘병아리부’로 명명되어 있다. 25년에 있을 대회에 나간다면 고작해야 배운 지 1년 언저리일 텐데 입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은 입상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정신을 차린다. 입상 떠나 탁구 대회 참가라니… 듣기만 해도 떨리기 시작한다. 그간 열심히 해 온 것을 연료로 삼아 마음에 불을 지핀다. 그리곤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얼떨결에 정해진 첫 목표이지만 목표가 없는, 목적이 없는 노력은 얼마나 허망했던가. 작은 성취들을 하나씩 모아 큰 목표를 이루는 즐거움을 한껏 느껴봐야겠다.



이전 03화탁구에 대한 양가감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