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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의 첫 경기. 충북 지역 선수들로 구성된 팀과 첫 대진이 붙었다. 한 분이 오픈 2부고 나머지 분들은 4부로 구성된 팀. 양 팀에서 게임 전 대진을 짜기 위한 전략이 총동원된다. 3게임 중 2게임을 잡아야 하니, 단식 2게임과 복식에서 어떤 상대와 만나 우리 팀이 승을 가져올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가장 실력이 좋은 상대에게 우리 팀 역시 가장 강한 상대와 맞불을 놓을 수도 있으나, 가장 실력이 좋은 상대로 우리 팀에서 가장 약체를 붙여 그 게임은 내어주되, 나머지 2게임에서 승을 가져오는 전략도 있었다. 탁구를 치기 전부터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는 격.
첫 32강 팀은 후자의 전략으로 나왔다. 가장 강한 코치님을 상대로 전력이 약한 선수를 붙여 1승을 내어주고는 나머지 복식과 단식에서는 이 악물고 승부를 보려는 게 보였다. 코치님은 땀도 나지 않을 정도로 몸풀기의 싱거운 3:0 게임 승리를 가져왔지만, 복식과 중펜 친구의 단식은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는 경기가 이어졌다. 다행히 동시에 치러지는 경기에서 복식팀이 공방 끝에 경기를 가져오면서 나머지 단식 경기도 자연스레 끝나게 되었다. 코치님은 복식 경기를 뒤에서 보고 난 뒤 “마음 좀 편하게 해 줘라~~”라며 우스갯 농담을 던졌다.
16강에서는 중펜 친구가 단식을 내주고, 복식조는 이긴 상황에서 코치님과 마지막 상대 선수 단식이 이어졌다. 상대는 선수 출신 동호인으로 본인 이름으로 탁구장을 운영하는 관장이었고,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선수인듯했다. 여기서 지면 탈락되는 상황이라 우리 팀을 비롯 상대팀 역시 긴장하면서 게임을 지켜보았음은 물론이다. 코치님과 상대 선수의 경기는 접전에 접전을 거듭했다. 상대는 움직임과 볼 파워, 그리고 스피드까지 좋은 선수였고, 특히나 셰이크핸드 특유의 백핸드가 일품이었다. 상대의 좋은 공격에는 코치님 역시 박수로 화답하며 호흡을 맞추며 게임을 즐겼다. 아직 30대 선수부도 잡아내는 관록의 펜홀더 원탑인 코치님답게 이 게임 역시 명경기로 만들어가면서 결국 세트 3:1 승리를 가져왔다. 코치님의 상의는 땀에 비 오듯 젖어 있었다.
다음 8강 대진을 보니 8팀 중 지방팀은 자취를 감췄고, 모두 서울에서 내려온 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8강 우리의 실업 선출 선수가 관장으로 있는 탁구클럽. 그 팀에는 오픈 대회에서 유명한 1부 젊은 친구가 속해 있었기에 그 누구도 쉽게 승부를 예측하지 못했다. 첫 단식에서 중펜 친구가 게임을 내주었다. 뒤에서 게임을 보던 코치님도 “공이 높게 올 때는 선제를 먼저 걸어야 하는데…” 하며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2게임 관장, 부관장의 복식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소게임이 펼쳐졌다. 1부와 4부 합부수로 나가게 된 복식팀은 대체로 핸디를 몇 점씩 받으면서 시작했는데, 복식에서는 이 핸디 점수가 더 무시하기 어렵다고 한다. 복식의 규칙상 처음부터 강한 서브를 넣기도 힘들고 나만 잘한다고 해서 점수를 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게 복식인데 처음엔 약체로 평가되던 우리 복식팀은 그래도 선전을 펼치면서 풀세트 접전에서 승리를 가져왔다.
마지막 게임은 코치님의 단식경기. 상대는 1부의 떠오르는 젊은 친구. 이전에도 여러 대회에서 이 친구와 게임을 나눠봤지만 누가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게 승과 패를 나누고 있었다고. 펜홀더 특유의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이냐 디펜스가 좋은 셰이크 선수의 수비냐 하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자 대회에서 손꼽히는 명승부였다. 국대 경력에 유명세까지 타서 그럴까, 코치님의 경기마다 옆에서 보는 관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번 경기 역시 많은 탁구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탁구 경기를 중계하는 유튜버들이 자리가 좋은 곳에 카메라를 놓고 촬영하고 있었다.
경기 내용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거의 매 세트 9:9까지 가는 시소게임을 보여주었다. 듀스에 듀스를 거듭하기도 하면서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려는 게 보였다. 5세트 9:9 접전에서 코치님의 강공 드라이브를 날렸고, 상대가 멀리서 라켓 끝에 겨우 맞추면서 코치님은 아웃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높게 뜬 공이 내려오면서 테이블에 들어왔고 살짝 방심했던 코치님은 그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실점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 점수를 가져왔다면 이겼을 것이라고 코치님이 말했으니까. “그게 그렇게 들어와서는…” 하면서 아쉬운 탄식을 뱉었다. 그 점수로 인해 상대는 분위기를 탄 듯했고 그대로 한 점을 더 보태면서 경기는 끝났다. 코치님까지 단식에서 패하면서 우리는 총 1:2로 8강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가정이지만 이 팀을 꺾고 올라갔다면 4강전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수월할 팀을 만났을 테고, 그렇다면 3위 내로 입상도 노려볼만했다. 우승까지는 바라지 않았으나 그래도 입상하여 이름을 남기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모두의 눈에 비쳤다. 그래도 우리 팀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어떤 팀에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만족한다. 매 경기 뒤에서 바라본 내겐 하나의 타이틀을 떠나 그들의 드라이브와 쇼트가, 공격과 수비가, 단합된 모습과 이기려는 의지가, 그저 공 하나에 집중하고 즐기는 모습이 제일 멋졌다.
경기를 다 치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진천에서 맛있는 갈비집으로 넘어가 저녁을 함께 했다. 저녁을 먹고 카페로 이동해 커피 한 잔을 하면서 탁구 이야기도 종종 나누었지만 그 외에 우리네 사는 이야기에도 흐름이 이어졌다. 탁구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니 개인 면면이 보였고, 내가 몰랐던 그들 각자의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전생에 셀 수 없는 겁의 시간을 함께해야 이 생의 연이 닿는다는 말을 믿는다. 탁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리니 여러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늘 같이 동행한 이들을 인간적으로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사람과 공을 나누는 탁구의 매력이 이날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