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없는 장비병이 찾아오다 (2)

by 분더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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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탁구 성장기

48구


온라인 중고장터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정보를 탐닉하며 이것저것 궁금한 이 마음은 생활체육 탁구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같은 라켓이라도 어떤 러버를 붙이느냐에 따라 다르고, 본인이 구사하는 스타일에 따라 또 다르다. ‘라켓은 이게 좋더라, 러버는 저게 좋더라, 이런저런 조합이 최고다’ 하는 카더라 통신에 움직이는 마음을 잡기가 힘들고, 갈대같이 마음이 흔들거린다면 당신에게도 약도 없는 무서운 ‘장비병’이 찾아온 것이다. 이 병은 치료가 힘들기에 거부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른다. 금융 치료로 궁금한 장비를 다 써보고 나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고도 한다. ‘훈련된 몸이 최고의 장비’라는 깨달음을.

구장에서 쉴 때면 이리저리 놓여있는 라켓을 종종 구경했었고, 회원들과 라켓을 서로 돌려가며 써본 적도 있다. 내가 쓰던 판젠동, 국민 라켓인 비스카리아, 니타쿠에서 나온 히나 하야타 3개를 쳐봤을 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판젠동에 비해 비스카리아는 그립 두께가 조금 얇고 좌우 폭은 넓었다. 히나 하야타 역시 별다른 그립감을 느끼진 못했다. 다 손에 잘 맞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이상했다. 손에 감각이 둔한 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우터 라켓과 이너 라켓의 카본 위치 차이. 쉽게 말해 바깥쪽, 안쪽이다. (출처-버터플라이)

회원들의 라켓을 잡아보며 새로운 라켓 후보군을 추슬렀다. 요즘 많이 쓰는 라켓은 알릴레이트 카본이 목판 사이에 위치한 alc 라켓이다. 목판 안쪽에 카본이 위치하면 이너 라켓, 바깥쪽에 위치하면 아우터 라켓으로 분류한다. 이 위치에 따른 감각이 확연히 다른데, 이너 라켓은 볼을 안아주는 느낌이 강하고 타구감이 선명하다. 아우터 라켓은 볼을 쏴주는 느낌이 나고 타구감은 먹먹한 편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많이 차이가 있겠지만, 좋은 라켓은 없기에 자기와 맞는 라켓을 찾으면 된다. 대체로 이너 라켓은 이너포스 레이어, 옵차로프를 많이 쓰고 아우터 라켓은 비스카리아, 티모볼, 판젠동을 많이 쓰는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브랜드에서 제각기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라켓을 만들어 출시하고 있고, 구장 회원들의 라켓을 보면 백화점이 따로 없다. 이래선 뭐 하나 고를 수 없다고 생각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장지커의 라켓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립은 한번도 써보지 않은 일자 ST 그립으로 정하고.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 바로 용품점에 연락해 해당 제품의 재고 상황을 파악한다. 장지커의 경우 출시된 지 오래되어 86g 하나 남아 있고, 곧 단종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인기 스타의 라켓이 출시되면 은퇴 선수에 대한 관심이 뒤처지게 마련. 재빨리 마지막 제품을 맡아놓고 용품점을 찾는다.


장지커 + 전면 파스탁 G1, 후면 오메가4 프로
판젠동 물결무늬. 좋은 비늘결의 라켓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판젠동에 있던 러버를 떼어낸 뒤 장지커 라켓으로 이식한다. 러버를 떼어내고 새 라켓과 러버에 풀을 바르고 다시 붙이는 과정인데, 수없이 러버를 붙여대서인지 직원의 작업에는 막힘이 없다. 탁구를 오래 칠 거니 러버 붙이는 작업은 앞으로 혼자 해볼 생각에 전문가가 하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며 눈에 담았다. 3개월을 함께 한 인생 첫 라켓인 판젠동은 소장하고 있으려다 중고 장터에 판매하게 되었다. 뒤늦은 이야기지만 물결무늬가 있는 이 라켓은 개체 중에서도 감각이 좋은 개체였던 것 같다. 떠나보내니 다시 생각나는 라켓이 되어버렸다. 새 라켓을 구매했으니, 핑계를 댈 이유가 사라졌으니 잡생각 없이 운동에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장비 교체는 없다’는 다짐을 했지만 과연 나는 장비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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