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이야기
그분과 오랜만에 한치의 긴장도 놓지 못할 게임을 펼쳤다. 오직 상대의 몸과 공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다. 마지막 5세트 9:9까지 갈 정도로 격렬했고, 주변 선수들이 우리 게임을 집중해서 보는 게 느껴질 정도의 경기였다. 마침 부관장 형도 이 경기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마지막 2점을 어렵게 가져오면서 2:3의 세트 스코어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잘 쳤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니 “안 본 사이에 엄청 늘었네요? 너무 잘 친다.”며 칭찬이 이어졌다.
이날 나의 성적은 5승 1패. 3명이 모두 5승 1패를 기록해, 승자승 원칙으로 순위를 매겼다. 첫 게임 1패를 하지 않았더라면 처음으로 조 1위를 기록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 조 1위는 나와 호각지세를 겨룬 분이 가져갔으나 그분에게 유일하게 1패를 선사했다는 것에, 이길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한 성취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5승이나 했어?” 상위부 회원들이 내 결과를 보고는 한 마디씩을 건넨다. 곧 8부로 올라가야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성장’이란 단어를 곱씹는다. 몇 개월에 한 번 본가에 어려운 발걸음을 하는데 갈 때마다 조카를 만난다. 엊그제 어린이집에 들어가 배운 인사와 노래를 들려줬던 거 같은데,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어 자기 몸집보다 큰 가방을 메고서 등굣길을 나선다. 가기 싫다고 때를 부리며 아침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지만, 막상 가야 할 시간이 되면 혼자 길을 나선다. 나서는 발걸음을 보니 룰루랄라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못 본 사이 부쩍 큰 키와 달라진 생김새를 유심히 보게 되고, 말의 유창함과 먹는 양에 놀란다. ‘자란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몇 달 동안 구장에서 함께 공을 나누는 회원들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것을 나 역시 알 수 없다. 그들의 탁구와 나의 탁구가 눈에 익숙해졌기 때문인데, 탁구를 떠나 우리네 삶 중 일련의 성장들도 드라마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 몇 달을 쉬고 온 회원에겐 나의 ‘성장세’는 단번에 보이게 된다. 눈으로 봐왔지만 처음 게임을 하게 되면 성장하고 있음을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눈에 띄게 늘었다’ 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는 자신이 체감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의 변화를 더 쉽게 알아보듯이. 조금씩 쌓이는 성과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다 해서 조급할 필요는 없다. 그저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갈 것을, 그 한 발자국의 걸음이 모여 길이 되고, 여정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