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땡.
Mz가 내 방에 나타났다.
| 얼. 음. 땡. |
“이런 것까지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해도 될까요, 코치님?”
간단한 안부 인사 후, 멤버가 물었다. 이 멤버는 소금과 후추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멋지다. 말 그대로 salt & pepper. 한국어로 직역을 하니 조금 멋짐이 빠지는 느낌이다. 여하튼, 흰머리카락과 검은 머리카락이 적절하게 섞여 중년의 미를 잘 보여주는 머리카락 색깔을 표현하는 말이다. 훅 들어오는 멤버의 질문에 ‘안 돼요’라고 짓궂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봐드린다.) 가급적 멤버가 원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했기에 자세를 고쳐 앉고 대답했다.
“말씀해 보세요, 부사장님.”
멤버는 지금 있는 회사에서 직급이 제일 높고, 사무실은 별도로 있다. 책상과 더불어 소규모의 미팅을 할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다. 가능한 사무실 문은 열어 놓고, 화상이나 다른 대면 미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라면 가벼운 노크 정도로 본인의 사무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캐주얼한 분위기를 유지한다고 했다.
그날도 멤버는 평소와 다름없이 본인의 사무실에서 이메일 확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긴박하거나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은 아니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MZ 세대의 젊은 직원이 문턱에 서 있었다. 멤버는 그 MZ 직원의 얼굴을 흘끗 확인하고, 들어오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MZ 직원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사무실 구석 언저리 쪽에서 어색하게 그냥 서 있었다. 직원이 그렇게 서 있는 동안 멤버는 키보드 위의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고, 자판 소리를 더 크게 냈다. 그렇게 몇 분을 흘려보냈다고 한다. MZ 직원은 사무실 구석에 서 있게 한 채 말이다.
(아 어떡해.)
내 머릿속에는 이미 영화가 끝날 때 올라가는 크레디트처럼 질문들이 줄줄이 지나갔다. 내 마음이 급하다는 이유로 질문의 폭포를 쏟지 않기 위해 바르게 앉아 있던 자세에서 다리를 꼬아 앉았다.
(MZ 세대 직원의 등장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가 있겠지.)
입을 앙 다물고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코치님, 나 걔 때문에 완전히 얼음 됐어요. 난 MZ 직원이 무서워요.”
(응?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서 지사장이라는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인데, 진심 어린 이 말은 대체 뭐지? MZ가 무섭다고? 아니, 그 직원이 본인을 무서워한다는 말이었나? 그리고 갑자기 얼음은 왜 된 건데?)
의도파악이 안 되는 이 밑도 끝도 없는 멤버의 말 뜻을 추적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부사장님, 얼음 되셨다면서 타이핑은 손가락도 안 보일 정도로 열심히 치셨다면서요. 심각한 이메일 답장을 하고 계셨던 건가요?”
업무의 긴박함이 있었는지 먼저 파악하기 위해, 하고 있던 일을 멈추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아니요. 굉장히 바쁜 척하면서 시간을 끈 거였어요. 속으로 ‘쟤가 왜 왔지? 이상한 소리 하면 뭐라고 답하지? 왜 혼자 온 거지? 본인 사수랑 같이 안 오고 어디 간 거야?’ 당황해서 뭐라도 하면서 왜 온 건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끈 거였어요.”
일 말인즉슨, 멤버는 직원의 등장이 무서워서 일부러 바쁜 척을 했다는 말이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았다.
(아, 이 귀여운 주제를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나?)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멤버에게 물었다.
“부사장님, 무섭다고 말씀하신 거 맞지요? 무섭다는 거가 두렵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건가요?”
“어엇. 두려운 것은 아니었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어색한 그 순간에 당황했어요. 쑥스러운 것은 아니고. 잘 모르는 MZ 직원이 나타나서요.”
(허, 그 참. 당황함을 무섭다고 표현하시면 어떡하냐고요. MZ가 도깨비도 아니고, 저승사자도 아닌데 왜 무섭냐고요.)
“부사장님, 오늘 이 이야기를 저에게 하려고 했던 이유가 기억나세요? 당황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은 거 맞지요?”
맞지 않는 내용으로 질문했다. 그래야 멤버가 나의 오류를 잡아주기 위해 조금 더 다듬어서 생각을 얘기할 것이다.
“아니요. 얘기하려던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세대차이를 느끼는 직원이랑 어색하다는 말이었어요. 어색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쌩큐! 그렇취! 그렇게 원하는 바를 깔끔하게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좋아!)
나는 양손으로 반대편의 팔을 감싸며 몸을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부사장님, 궁금하게 있어요. 부사장님이 신입이셨을 때요. 높으신 분 방에 심부름을 하러 들어가거나, 엘리베이터에 단둘이 탔을 때나,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그때 같이 일했던 직급이 높으신 분들이요. 생각나는 대로 머릿속에 떠올려 보시겠어요?”
말 속도를 조금 느리게 조정했다. 멤버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단둘이 같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거나 상관없이 그 높으신 분들은 어떠셨어요?”
“뭐. 대화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셨던 거 같고. 그냥 대면대면 인사만 하고 거리감이 있는 분도 계셨고. 그리고… 뭐 본인 할만한 하고 말 길고.. 그런 분도 있었고요. 단둘이 있을 때는 뻘쭘하죠. 괜히 더 불편하고.”
멤버는 그분들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나는 설명하는 내용과 상황들을 상상하며 들었다. 어떤 부분을 기억하고 있는지, 왜 기억하고 있는지 이유가 명확하게 들렸다.
(나는 선명하게 들리니까 말해줄까요? 이유를 알면 MZ 안 무서워할 수 있는데!)
멤버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때가 되면 가끔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조언도 듣고, 소주잔이란 같이 기울이는 분들은 애정을 가지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궁금함을 유지하는 사이가 된 분들이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이 당연함이 어색한 썰렁함을 녹여 줄 수 있는 따뜻한 장작불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시니, 나에게 고백하시는 것 아니겠나.
(MZ가 무섭다니… 아 귀엽다 부사장님아. MZ는 부사장님이 더 무섭단 말이에요.)
오케이 더 이상 짓궂은 혼잣생각은 그만하고 마무리해드려야 했다.
“부사장님, 사람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뭐죠?”
“예? 인사를 할거 같은데요.”
“네.”
아린 아이가 숙제 검사받듯 또박또박 대답을 잘하신다.
“그다음에는요?”
“뭐… 안부정도요.”
“네.. 그다음에는요?”
“용건이 있다면 용건 얘기를 할 거 같고요. 아니라면 다시 인사를 하고 각자 가던 길 가겠지요.”
“네 그렇죠. 그러면 만약, 클라이언트와 마주쳤다고 가정을 하면요?”
“고객이라면 근황도 묻고, 요새 하는 일 잘 되는지도 묻고,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이래저래 묻고.. 그러겠죠.”
고객이라고 생각하니 할 말이 많이 생각나시는지 말을 이어간다. 무언가를 더 캐내야 하고 조금 더 낮은 위치에서 대하는 태도로 적극성을 표현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 빙고. 이제 마무리 타임~)
“부사장님. 지금 정답은 다 말씀하셨어요. 본인이 답을 다 말씀하셨는데. 정리해서 말씀해 보세요!”
멤버는 이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계셨다. 코치가 묻는 답에 꼬박꼬박 성실히 답했으니 요점 정리는 코치가 본인이 알아듣는 말로 ‘네가 말해줘’라는 제스처다. 나는 본인이 직접 정리하시라는 뜻으로 검지를 추켜올려 저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다.
그날의 주제는 MZ를 무서워하는 너무나 귀여운 문제이니, 조금은 쉽게 가야겠다 싶었다.
“부사장님, 제가 오늘은 이 주제가 너무 귀여우니 제가 정리해 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숙제드립니다. 말씀드린 대로 해보시고 다음 세션에서 결과 보고받겠습니다! 공평하죠?”
비장하고 단호하게 멤버에게 말했다. 멤버는 매우 빠른 속도로 고개를 위아래로 저으며 그러겠다고 큰소리로 그러겠다고 답했다.
“MZ 직원이 또 찾아오면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의식적으로, 틀림없이, 꼭 궁금해하십시오. 안부도 묻고, 근황도 묻고, 일 잘 되는지도 묻고요. 진심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뻘쭘하게 세워놓은 것은 미안했다고. 당황해서 바쁜척했다고 고백도 하시고요. 그리고 어색한 상대 누구든지에게 다 통하는 비법입니다.”
“아, 고객 대하듯…”
멤버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당연한데 너무나 타격감 있는 ‘꿀밤’ 한 대 맞으신 얼굴표정이었다.
어색한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고 굳이 대화를 해야 한다면 당황하지 말자. 상대도 무서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남녀노소, 위아래 다 포함해서 그냥 어색한 것이다. 장작불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불을 붙이면 되는데, 불장난은 안된다.
나도, 너도, 우리 그냥 다들 어색할 때가 있다. 오늘도 나는 장작불을 수시로 때웠다.
얼음, 땡!
***피차일반! 서로 어렵고, 어색하고, 좀 그렇지요? 그래도 좀 친해집시다 여러분! 조금 더 친해지면 직장생활이 한결 더 수월하거든요. 정말로요! ^..^
하루에 하나… ‘낀 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경욱 코치입니다.
학교 교육을 마치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돈벌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돈벌이의 중심, 바로 ‘회사’라는 조직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낀 자’는 회사라는 조직 안의 모든 구성원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조직의 구조 안에 끼어 있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문제와 문제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끼어 있을지언정, 나의 선택으로 인해 끼어 있거나 혹은 조금 더 나은 나만의 방식으로 끼이지 않고 헤쳐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 절박함 속에서 방법을 배웠고, 마침내 조금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배움을 통해 편히 숨을 쉴 수 있었으니, 끼어 있는 누군가에게 그 방법의 작은 조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을 보탭니다.
그 응원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한 편 한 편 정성껏 쓰고 그렸습니다.
본인을 위해, 그리고 응원이 필요한 ‘낀 자’에게 미소와 함께 전해 주세요.
한 장의 작은 응원과 함께 웃으면서 해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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