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승진이냐 이직이냐?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해외 출장과 국내 행사들로 인해 매우 바빴다고 했다. 이제 두 번밖에 남지 않은 세션이 아쉽다고 했다. 남은 시간 동안 승진과 커리어 방향을 확실히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워낙 적극적이고 성찰에도 부지런한 표 이사는 오늘도 나누고 싶은 내용을 꼼꼼히 적어왔다.
“이번 해외 출장 때 다른 나라 임원들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각 나라의 상황도 들었어요. 역시 다양한 브랜드와 여러 지역을 관리하며 폭을 넓혀야겠다는 제 판단이 맞았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코치님.”
해외 임원들과의 대화에서 느낀 점과 얻은 정보들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지금 이 조직이 매우 만족스러워요. 회사에서도 인정해 주고요. 앞으로 승진 조건이나 방향도 호의적으로 관리되고 있어요.”
“네, 좋네요.”
“그런데 조직이 워낙 크고 복잡한 체계라, 제가 원하는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몇 년은 좋은 성과를 유지해야 할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매우 만족해요. 가족들도 그렇고요.”
“네에.”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 두 곳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어요.”
“네에.”
“한 곳은 아직 초기 단계라 이런저런 정보를 요청한 상황이고요. 다른 한 곳은 제가 원하는 조건과 위치로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어요. 게다가 곧 상사와 승진 관련 미팅도 예정돼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 지금도 만족스럽고, 이직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한쪽을 선택했다가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요. 어떡하죠?”
(원하는 선택을 하면 되죠!)
내 대답이 시큰둥한 이유가 있다. 표 이사는 본인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그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꼼꼼하게 설명하는 이유를 나는 듣고 있었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 있었다.
(물론 말로 하는 것도 다 듣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어떡하긴요. 표 이사님이 원하는 옵션으로 선택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어떤 선택을 원하시는 건가요?”
표 이사는 대답 대신 각각의 옵션의 장단점을 다시 꼼꼼히 설명했다. 몇 시간이고 질문을 달리해도 거침없이 대답할 기세였다. 혹시 빠지는 내용이 있을까 해서 한 번 더 물었다. 총 세 번.
(삼세번 좋잖아요… 읔.)
오케이. 같은 답을 계속하니 이쯤에서 끊어야 했다.
“이사님, 본인은 회사에서 일하고 승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요? 랜덤 한 질문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표 이사는 팔짱을 끼고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카메라를 멀뚱히 바라보며 그 큰 눈으로 꿈벅거리기만 했다. 삼십여 분을 쉼 없이 이야기하더니 조용했다.
나도 팔짱을 낀 채 몸을 앞으로 숙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꽤 긴 침묵이었다. 이렇게 긴 침묵이 이어져도 괜찮다. 그래봤자, 10초가 넘어가지 않는다. 고객이 먼저 침묵을 깨도록 기다린다. 나는 그만의 버블이 잘 터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팔짱을 풀고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코치님, 그 ‘다른 무언가’… 그걸 어떻게 찾죠?”
(아, 다 됐다! Pop that bubble!)
“그러게요. 어떻게 찾으시겠어요?”
표 이사는 살짝 답답한 듯 미간을 좁혔다.
(알겠다고요. 이쯤에서 그만 약 올려야지요.)
“이사님, 있잖아요. 본인 마음이 설렜던 게 뭐가 있을까요? 일 말고요. 뭘 하면 기분이 좋고, 여유로움도 느끼고, 행복감도 있었나요?”
잠시 생각하더니 그림 보는 걸 좋아해 주말마다 전시를 보러 다녔다고 했다. 음악도 좋아하고, 산책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오만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셨군요. 그 좋아하는 걸 했을 때 얻은 게 있다면 뭐였을까요?”
그 질문에 또다시 열심히, 꼼꼼히 설명했다. 역시 표 이사답다!
답은 우리가 이미 다 아는 답이었다. 엉켜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영감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맞죠! 그렇죠! 그걸 그새 잊으셨엉!!!)
“이사님, 본인을 크게 쓰세요. 그 큰 관점에서 지금의 고민을 다시 보세요. 지금 잘하고 만족하고 계시니 회사에서는 그렇게 계속 성장하세요. 그리고 본인을 설레게 하는 것, 그래서 확장해 가며 ‘스스로의 쓰임’이 무엇 일지를 열심히 찾아가시면 좋겠어요.
소니가 그랬다죠. 한창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상품을 많이 파는 걸 넘어 일본이 만드는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겠다’고요. 실제 체격보다 더 크게, 넓게 포지셔닝한 거예요.”
(정말 중요한 건, 잘 나갈 때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겁니다.)
표 이사는 한 번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세션을 위해, 크고 넓게 쓸 자신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 오겠다고 했다.
(암요, 암요! 너무나 응원합니다! 다음 주 기대할게요!)
*** 나무와 숲. 우리는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사는 게 바빠서 까먹는 거, 이제는 좀… 그만요.
*** 고민한다는 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가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고민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 더 행복한 쪽으로. 힘들어도 기꺼이 할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게 맞지 싶습니다.
*** 그래서, 오코치 넌? 아놔, 저를 걸고 그러진 마세요. 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나무와 숲을 오가며 분주합니다. 오르락내리락해도 결국은 상향 곡선을 그리면 되니까요.
*** 굳이 이분법으로 나누자면, 해보는 자와 이유만 많은 자. 저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합시다! 해요! 스스로를 크게 씁시다!
큰 게 싫으면, 암팡지게라도요.
응원합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낀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학교 교육을 마치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돈벌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돈벌이의 중심, 바로 ‘회사’라는 조직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낀 자’는 회사라는 조직 안의 모든 구성원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조직의 구조 안에 끼어 있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문제와 문제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끼어 있는 건 알겠는데 어렵고 힘도 들지요.
그 안에서 웃고, 울고, 또 울고…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나아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조금 편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낀 자’에게 그 작은 조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응원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일 수 있도록, 한 편 한 편 쓰고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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