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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의 조화

그럴 수 있습니다.

by 오 코치
엇박자의 조화
그럴 수 있습니다.



고객이 개선하고 싶어 하는 어젠다에 따라 세션이 진행된다.


그의 주제는 ‘소통을 잘하고 싶다’였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소통’은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의 ‘소통을 잘하고 싶다’를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데만 무려 90분이 걸렸다.


그의 말은 길었다. 단문이 없었고, 말마다 꼬리가 이어졌다.
아주, 매우, 꼼꼼하게 설명했다. 덕분에 중요한 포인트는 증발해 버렸다.
말의 속도는 말 같았다. 그는 냅다 달렸다.
답을 하는 듯했지만, 답을 하지 않았다.
질문의 의도는 기차 창밖의 풍경처럼 슈웅하고 지나갔다.


(와아.)


그는 단문과 두괄식으로 천천히 말하는 연습을 시도 중이라고 했다.
숙제로 기술적인 연습부터 해보기로 동의했다.


(시도? 시도라니. 2주라는 시간 동안 연습 한 번을 안 했다는 거야?)


개선을 필요로 하고, 상사에게 진행 과정을 보고해야 하는 건 본인에게 급한 일이었다.
목마른 사람은 코치가 아니지 않은가.


그의 말은 길고 빨랐다.
나는 에너지 벨트가 마모되는 듯한 건조함에 뻑뻑함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본인의 수고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그의 게으름이 나를 자극했다.

경고등이 들어왔다.


섣부른 나의 기대에 내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럴 수 있지.

소통의 기술을 연습해야 함을 인지하는 것조차 생소할 터인데,
내가 욕심을 낼 게 뭐람.’


시도조차 못한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건 오만가지 ‘이유’였다.


‘그럴 수 있지.’


그는 연습할 상대를 회사에서만 찾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지. 문제의 현장에서 연습 상대를 찾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걸 싫어하신다고 언급하신 적 있었죠.
가장 좋은 연습 상대는 본인이에요. 본인을 상대로 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짧게, 요점을 먼저, 천천히.”


“맞아요. 제가 다른 사람 의견 듣는 거 정말 싫어해요.”


그가 왜 싫은지를 설명하려는 순간,
세션 종료 알람창이 떴다.


연습할 것을 약속하며 그가 말했다.


“너무 재미있어요. 이렇게 하나씩 진짜 이유를 알고 연습할 수 있다는 게요.
사실 개선사항 피드백을 받고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그걸 말씀드리는 것조차 창피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한테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내 기대치와는 너무 먼 당신이지만,
그는 본인의 기대치에 잘 다다르고 있었다.


그의 갈증이 해소되었다면,
나는 잘 닦인 컵을 들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면 되리라 생각했다.


나도 갈 길이 가깝지는 않다.


***

‘그럴 수 있지’는 상대를 위한 말이자,
조급한 나를 진정시키는 주문이었다.

소통의 기술은 연습으로 다듬지만,
소통의 존중은 사유로 다듬어진다.


내가 조급해질수록 엇박자가 납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나요?


엇박자.jpg ©Williams Oscar A.Z. All rights reserved.







사람과 문제 사이, “낀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 속에서
“생각 리터치”로 조금 다른 각도로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울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프로 코치로서, 생각의 결을 다듬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더 많은 “낀 자”에게 닿기를 소원합니다.


생각이 잠시 머무는 곳,

오코치 드림


#생각의_잔상 #오늘의_사유 #감정의_기술 #직장인_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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