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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의 진심

이유라도...

by 오 코치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의 진심
이유라도…




“예산은 깎이는데 매출 목표는 안 깎아주네요. 정말 영혼을 갈아 넣어서 하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무의미해요. 할 일이 산더미인데, 너무 하기 싫어요. 번아웃일까요, 코치님?”


(번아웃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아나요. 저는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고요… 매번 말씀드리는데… 요…)


그는 번아웃인지, 스트레스인지, 혹은 그냥 피곤한 것인지 구분해 달라며 물었다.


“번아웃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팀장님. 오늘 질문에 ‘답하기 싫다’는 말로 알아들어도 될까요?”

들킨 속마음에 멋쩍었는지, 그는 히히 웃었다.


“네, 코치님. 오늘은 그냥 응원이랑 조언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되죠. 암요, 암요.”


그냥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것이 코치도 쉽다.
얼마나 하고 싶은 잔소리가 많겠는가.
얼마나 알려주고 싶은 지름길이 많겠는가.

잠시 악마의 달콤함에 넘어갈 뻔했다.


(안돼요!)


“일이 많아서 힘드세요?”
등을 의자에 붙이고 조금 편히 앉았다. 그도 따라 했다.


“네. 일이 많은 것도 많은데… 소진되는 느낌이에요.”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기대며 천천히 말했다. 많이 지쳐 있었다.


“왜요. 뭘 그렇게 탕진하고 계시길래요?”


“코치님도 잘 아시겠지만요. 목표는 달성해야 하고, 팀원들은 각자 영혼을 갈아 넣고 있고요. 상사는 상사 나름대로 고민이 많아 보이시긴 한데, 딱히 도움을 주시진 않아요. 본인 목표 달성도 급하신가 봐요.”


특별할 것 없는 대화 같았지만, 그는 여러 번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사는 도움도 리딩도 없다고 하셨죠?”

“네. 디테일을 모르셔서인지, 일부러 안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정말 영혼을 갈아 넣고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영혼’은 어떤 영혼이에요? 무엇을 그렇게 넣으시는 건가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백하듯 말했다.


자신의 리소스와 인맥을 총동원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지인 찬스를 써서 비용을 줄이고, 일정도 조정하고,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했다.

불법도, 강요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수고로움이 과할 만큼 쓰였다.
그러니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표현이 절로 나왔던 것이다.


“에고고, 그렇게까지 하셨군요. 안 힘들 수가 없겠어요.”

잠시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시죠?”

그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일이니까,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거죠.”

(아… 고객님아, 그렇게 게으른 대답은 아니잖아요…)


“음. 할 수 없는 걸 하시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네요.”
그가 ‘앗’ 하며 입을 막고 웃었다.
또 들킨 것이다.


“말씀해 보세요.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시는 건가요?”

“그렇게 말을 들으니… 정말 왜 그랬나 싶어요, 코치님.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요?
탓을 받지 않으려고?
‘나 이렇게까지 했어’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는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이유를 쏟아냈다.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하세요?”

조용했다.


“본인이 답을 하셨는데, 그 이유가 다라고 느껴지세요?”

또 조용했다.
나도 조용히 눈만 깜빡이며 앉아 있었다.


(이그… 정말… 그게 아니잖아요…)


볼멘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팀장님, 말씀하신 이유도 분명 맞아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많은 걸 성취하셨을 거예요.
잘하셨어요.
그런데 아직 못 들은 이유가 있어요.
다들 달리니까 나도 달리고, 다들 파니까 나도 파고,
다들 올라가니까 나도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목적지, 그 ‘무엇’을요.”


번아웃처럼 느껴질 만큼 지친 팀장님께 유독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언과 응원을 한 바가지 드리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적을 찾는 일은 결국 스스로의 수고로움으로만 완성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나 또한,

삼십 년 가까운 조직생활 동안,
나를 아끼던 분들이 얼마나 많은 조언을 해주셨겠는가.
많았다. 아주 많았다.

내가 잘 들었냐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며 살짝 브레이크를 밟기는 했다.


결국, 열심히 일하던 내가,

내 몸과 마음이 다 닳아 멈추던 때,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돌거나, 뒤집어진다.
대형사고였다.


그래서 그 팀장에게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하나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시나요?”


***

일 열심히 하는 거, 좋습니다. (영혼 갈아 넣어요, 안 말립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하는지는 알아야죠. (목적을 뚜렷이 하고 갈아 넣자고요.)
그럼 정말 괜찮습니다. (흔들려도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저요?


이렇게 여러분과 마주 앉아 있지 않습니까. ^..^




갈기.jpg ©Williams Oscar A.Z. All rights reserved.







사람과 문제 사이, “낀 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 속에서
“생각 리터치”로 조금 다른 각도로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울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지금은 프로 코치로서, 생각의 결을 다듬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더 많은 “낀 자”에게 닿기를 소원합니다.


생각이 잠시 머무는 곳,

오코치 드림


#생각의_잔상 #오늘의_사유 #감정의_기술 #직장인_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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