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어요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터널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 우리 모두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 대니얼 고틀립 <샘에게 보내는 편지> 中 -
연애를 할 때 가장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커플 아이템이었다. 옷, 신발, 가방, 타투, 액세서리, 모자, 휴대폰 케이스 등. 커플 아이템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면 ‘우리는 커플’이라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K와 나는 비밀 연애를 하는 사이였기에 다행히도 커플 아이템은 할 수가 없었다. 물론 K의 성향 역시 커플 아이템을 선호하는 쪽이 아니었다. 그랬던 우리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종로의 주얼리 가게에 들어가 반지를 구경하게 되었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유치함에 몸서리치던 커플링을 장착하고 나섰다.
K는 커플링을 하되 디자인은 다르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고, 나는 커플링인데 디자인이 다른 건 말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가게 주인조차 난감해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며 종로 한복판에서 말다툼까지 벌였다. K는 담배를 폈고, 나는 팔짱을 꼈다. 소리를 지르며 싸우지는 않았지만 침묵 속에 느껴지는 매서운 기운에 사람들이 우리가 서있는 공간을 피해 걷는 게 느껴졌다. 담뱃불을 끄며 K는 내 손을 잡고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선택했다.
“앞으로 길에서 화내고 싸우는 건 용서 안 해.”
이래서 싸움에서 져준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하는 걸까. 원하던 커플링을 끼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떼쓰다 혼이 난 아이처럼 시무룩해졌다.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도 잡아주지 않고 한 걸음 앞서 걷던 K의 오른손에서 반짝이던 반지. 흠이라도 날까 봐, 잃어버릴까 봐 조심 조심 다루며 절대 빼지 않았던 K와 나의 커플링.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예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내 손을 먼저 확인하던 당신의 시선이 생각나요. 내 손에 반지가 끼어있으면 당신은 빼야 했으니까.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반지를 끼어달라며 나에게 사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당신. 미끄러지듯 당신의 손가락을 타고 들어가던 그 반지가 얼마나 예쁘던지.
서랍 깊숙한 곳에 당신과 함께했던 반지를 넣어뒀어요. 만약 당신이 다시 돌아와 그 반지를 찾으면 나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당신을 잊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