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

마음 한편에 오래 두고 지켜보는 사람

by 몽상가 J
나는 거짓말이 먹혀든 것이 만족스러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을 나섰다. 브뤼노 말이 맞았다. 중요한 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믿게 만드는 거였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의 내 삶은 짓궂은 농담처럼 느껴졌다.

- 로맹 모네리 <낮잠형 인간> 中 -


K에게는 나라는 사람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존재가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연애를 하기 전, K는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K를 아껴주고 지켜주던 사람, 그래서 K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질투가 났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수를 놓을 수 없는 사이였다. 그래서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오류였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도 아주 가끔씩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했고, 내가 알지 못하는 K의 과거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


“이제 그 사람 이야기는 그만 하자. 더 질문하지 마.”


그러다 아주 우연히 K가 휴대폰을 두고 화장실에 간 사이, 액정에 뜬 메시지를 힐끗 훔쳐보게 되었다. K에게 안부를 묻는 정도의 메시지였지만 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던 그 메시지를 읽고 나는 단번에 그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자리로 돌아온 K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던 내 표정과 휴대폰에 남겨진 메시지를 확인한 K는 긴 시간을 모른 체 하다 서로의 집으로 향하는 막차를 기다리던 순간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랑 연락하고 있어.”


괜찮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하냐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K는 미안해했고, 나는 거짓이 가득 담긴 고개를 끄덕인 게 전부였다.





당신에게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화를 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보낸 메시지는 너무도 다정했거든요.


당신과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에 드는 순간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날 밤,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요? 몰래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에게서 멀어지라고 소리쳤어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 멀어지라고.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나는 왜 그 사람처럼 끝까지 당신을 지켜주지 못했을까, 아직도 후회가 돼요. 당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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