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베는듯한 당신의 한마디
할머니의 눈에는 기묘하게 뜨거운 빛이 서려 있었다.
“틀림없이 만날 수 있어요.”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꿈을 꾸었지요? 꿈을 꾸는 것은 상대가 당신을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온다 리쿠 <몽위> 中 -
나는 하루에 한 번씩 K를 위해 일기를 썼다. 오늘 내가 무얼 했는지, 당신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K 역시 내가 쓴 글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며 기뻐했다. 문자와 전화도 충분히 오고 갔지만, K와 내가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내가 쓴 일기를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는 시간이 즐거웠고, 늦은 시간에 글이 올라가는 날이면 K의 재촉 문자가 날아오기도 했다. 밀린 연체료를 닦달하는 책방 아저씨처럼.
차마 눈을 바라보며 하기 민망한 수준의 애정 표현이나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를 할 때도 우리 둘만의 일기장은 꽤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K는 내가 쓴 글을 읽은 뒤 메시지를 보내오거나 전화를 했고, 일방적인 나의 이야기를 어루만져주었다. K의 독려가 이어지고 깊어질 때마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정성이 가득한 글을 써 내려갔다.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
어느 날 K는 내가 쓴 일기를 읽고 현실성이 없는 판타지를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낯선 반응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던 K에게 핀잔 섞인 피드백을 받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K의 그 한마디는 우리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내가 다정하게 안아달라는 글을 올리면, K는 차가워진 가슴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꿈속을 걷고 있었던 걸까?'
난 그동안 당신의 품이 아닌 꿈속을 걷고 있었던 걸까요. 차라리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과 공간과 찰나의 순간들이 깨지 않는 꿈 속이었다면 좋았을 걸. 당신의 따뜻했던 품처럼 포근한 꿈속에서 깨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