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 : 장도연의 쉼표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을 그리 즐겨보지 않는다. 출연자 중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들의 일상 속에서 내가 무슨 재미를 찾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 보지 않게 되었다. 아주 가끔 예능에서 보기 힘든 사람들이 나올 때나, 누가 봐도 재밌는 회차를 찾아보기는 한다. 그런데 오늘 운동을 하면서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틀어놓게 되었는데, 생각지 못한 출연자의 한 마디에 꽤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장도연이었다. 장도연이 제주도에 있는 대학교 때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부터 시작을 했는데, 장도연의 친구는 10년 동안 몸담았던 광고 쪽 일을 정리하고 제주도에서 당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엄지를 들었다. 어떻게 10년간 커리어를 쌓고, 농사를 지으러 제주도로 갈 수 있지?


장도연은 친구의 당근 밭에 가서 같이 당근을 수확하고, 새참을 먹은 뒤, 친구의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등 진짜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산책 후 친구와 밥을 먹으며 나도 궁금했던 질문을 그녀가 던졌다. 어떻게 그동안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내려올 수 있었어? 친구는 번아웃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도연은 한 번 더 물었다.


"번아웃이 왔는데 온 지 모를 수도 있나?"


나는 이 질문이 놀라웠고, 가슴 아팠다. 그녀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만약 자신이라면 번아웃이 이미 왔더라도 지나쳤을 것 같다고 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거라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도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할 수는 없고, 아무리 내가 원하고 꿈꿔왔던 일이라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장도연의 친구는 번아웃이라는 게 어떤 건지 표현하기가 애매하다며,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번아웃을 경험했는지, 장도연의 표현처럼 이미 나에게 닥쳤는데 내가 무시하고 지나친 건 아닐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앞에 나란히 줄지어 있으니 두려워서 따라오지 말라며 도망치지는 않았을지. 작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약 반년간 힘들었던 그 시간 속에 번아웃이 내재되어 있었던 건 아닐지.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고민은 더 안타까웠다. 일이 없을 때는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일을 하는 시간 외에 빈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취미가 없고, 다른 사람들은 휴식 시간에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걸 보면서 그렇게 부러웠다고, 자신은 이 프로그램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했다.


"제 인생이 글이라고 치면, 문장이 쭉 가다가 쉼표가 있고 마침표가 있으면 새 문장을 딱 시작하고 이러잖아요. 저는 그런 거 없이 다다다다 하다가 느닷없는 데 쉼표가 찍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녀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쉼표로 인해 주어지는 휴식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듯했다. 마치 휴식 시간마저 하나의 스케줄처럼 소화해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휴식 시간에는 그냥 마음 편히 쉬면 될 텐데.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놀 때도, 홀로 취미생활을 즐길 때도 열정적인 편이다. 책을 읽어도 반드시 리뷰를 남기고, 배구 경기를 봐도 경기가 끝난 뒤 기록지나 경기에 대한 기사를 챙겨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배구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는데 경기 리뷰만 남기면 응원하는 팀 성적이 자꾸 떨어져서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20살 때부터 매년 다이어리를 사서 거의 매일 일기를 쓰기도 한다. 취미로 즐겁게 시작한 일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스케줄이 되어 잊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메모해두기에 이르렀다. 친구들은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며 제발 그냥 쉬라고 하지만 장도연의 말처럼 다다다다 달려가는 도중 갑자기 쉼표가 찍혀버리면 나는 너무 당황할 것만 같다.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달까.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했을 거라 생각한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와중에 느닷없이 찍히는 쉼표. 다른 이들은 어떻게 그 쉼표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을까? 타인의 삶이, 타인의 휴식이 궁금해지던 순간이다.

keyword
이전 22화47일 : 술에 대한 입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