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 : 술에 대한 입장 차이

설 연휴 동안 술을 마시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몽상가 J

술만 마시면 기분이 업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런데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후에 내 행동들이 아주 가관이다.


술 버릇이라고 할 건 없지만, 보통 술에 거나하게 취하면 과감해지고, 애교가 많아지고, 말이 (더) 많아지고, 주변 지인들과 통화를 하는 편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후배들과 술을 조금 마셨는데 기분도 좋고, (미세먼지는 최악이었지만) 날씨도 좋아서 한 시간만 걷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후배들은 먼저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고, 홀로 강남에서 삼성까지 걸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를 했다. 누가 들어도 이미 하이톤으로 치솟은 목소리 때문에 술에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끝끝내 나는 취하지 않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길에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봐도 취객이었다.


그날 남사친과 통화를 하면서 깨달은 포인트가 있는데, 술에 취한 와중에도 술이 깨면 그 내용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내용에 대해 짧고 굵게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은 두 부류가 있다. 여자가 술에 취하길 바라는 남자와 술에 취하면 혼을 내거나 화를 내는 남자.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술에 취하길 바라는 남자는 삼귀는 사이이거나 연애 초반일 경우,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기 위해 술을 권하는 경우다. 흔히 하는 말로 '수작', '작업'을 걸기 위해 밑밥을 까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가끔 상대의 감정을 살짝 누그러뜨리기 위해, 또는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술을 시킬 때가 있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 사이에 술이라는 매개체가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가끔 삼귀는 사이에서 술 게임을 하자고 하는 건, 100% 상대를 취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그런 녀석을 만나면 정신력과 집중력, 고도의 게임 기술을 이용해 역으로 상대를 더 먹이는 나 같은 여자를 만나면 그 의지는 오래가지 않아 꺾이게 된다. 그리고 번외의 이야기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억지로 술을 먹이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취하게 만드는 것은 범죄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류인 술에 취하면 혼을 내는 남자는 이미 연인이 된 경우에 자주 보이는 타입이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로 했다거나, 오늘 회식을 했는데 너무 많이 마셨다거나, 술을 마시다 보니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경우,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술을 마시고 이제야 집에 기어들어가냐며 잔소리 폭격이 시작된다. 우리 아빠도 내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데, 왜 그러시는지. 어찌 생각하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제재를 가하려는 아주 꽉 막힌 스타일의 남자를 만나면 답이 없다. 이런 남자는 보통 술 먹는 것에만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귀가 시간, 옷이나 화장법까지 참견을 한다. 남이사! 네 인생이나 잘 살아!


결론적으로 그동안의 패턴을 되돌아보니, 두 부류의 남자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귀기 전에는 술에 취하길 바랐던 남자들이, 사귄 후에는 술에 취하면 화를 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두 부류가 아닌, 세 부류의 남자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나와 통화를 했던 남사친처럼, 내가 술에 취하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고! 꼬인 혀로 애교를 부리는 것이 못마땅한 부류의 남자가 있다. 그는 말했다. 술에 취하는 건 너의 자유의사이나 애교를 부리지 않는 건 타인을 위한 배려다. 앞으로는 주사에서 애교를 빼보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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