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패턴 바꾸기

내가 아닌 네가 되는 순간들

by 몽상가 J
그에게 시간을 선물했네
나에게 남겨진 모든 시간을
심장이 멎은 뒤에도
두근대며 흘러갈 그 시간을
친구가 눈감던 날
나 문득 두려움 느꼈네
이 사랑 영원할 수 있을까
그에게 시간을 선물했네
나 죽은 뒤에도 끝없이 흐를
여울진 그리움의 시간을

- 정희성 <선물> -




나는 사소한 일이라도 K에게 의논하고 허락받는 걸 즐겨 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회식이 있는 날, 특별한 모임에 참석하는 날일 경우 의상 컨펌을 받는 건 또 하나의 즐거운 놀이였다. K가 가장 싫어했던 옷은 짧은 치마. 그러나 내가 가장 즐겨 입는 옷 역시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짧은 원피스.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회유책을 써보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고, 특히 회식이 있는 날은 K의 컨펌이 더더욱 쉽게 나지 않았다.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K의 단호함에 눈물짓는 셀카를 보내기도 했지만 절대 흔들리는 법은 없었다. 물론 K가 내 옷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싫지 않았다. 그만큼 나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있는 거라 생각했고, '이 사람도 질투를 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얌전하게 입었으니까 칭찬해주세요."


그렇게 나는 K와 만나는 동안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스타일부터 말투, 음식 취향까지 모두 내가 지켜온 것들이 하나 둘 무너지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이별을 맞이했던 나는 내가 하는 행동들 속에 남아있는 K의 흔적 때문에 가장 힘들어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마저도 K에게 의지했던 나였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리움으로 채워나가야 했다.


나는 왜 모든 걸 K에게 기대어 있었을까?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내 삶의 전반을 짓누르는 행동들이 느껴질 때마다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오히려 더 큰 그리움을 불러내는 꼴이었다. 반달 모양이 예쁘게 올라서 있는 손톱 끝을 정리해주던 K의 습관 때문에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손톱을 매만지곤 했다.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 했다. 별것도 아닌 손톱 끝을 바라볼 때조차 K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될 테고, 그것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 될 거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직도 손톱 끝을 정리하는 걸 좋아할까요? 버스 뒷자리에 앉아 항상 내 손을 그렇게 만져줬잖아요. 그때는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손을 빼고 숨기기도 했지만 지금 나의 가장 특이한 버릇 중 하나가 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헤어질 때쯤 내가 당신의 등 뒤에 살포시 기댄 채로 말했잖아요. 조금만 더 나를 지켜달라고. 나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의지할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저 당신이 내 편에 서서 어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눈빛만 보내준다면 정말 든든했을 텐데. 존재만으로도 내게 벅찬 감동을 주는 사람이니까. 지금도 가끔씩 그 생각을 해요. 내가 당신이 바랐던 것들을 다 들어줬던 것처럼 당신이 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의 품에서 칭찬받고 싶어요. 만약 내가 당신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되는 날이 오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동안 아프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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