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시간 3초
붙잡아두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그 모든 순간을 선명하게 기록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순간에
셔터를 누르지 않는 사진가처럼
우리는 때로 사진을 찍지 않고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한 때도 있다.
마음으로 기억하고
각인하기 위해서.
더 깊고 달콤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길 원한다면.
- 이애경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 순간에 머무르기> 中 -
K와 특별한 관계가 되기 전부터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선후배 사이였기에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게 자연스러웠고, 가끔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 보이진 않았지만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재밌기도 했고 무엇보다 설렜다. K가 전화를 걸어오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열일 제쳐두고 통화에 집중을 했는데, 액정에 K의 이름이 뜨는 순간부터 자세를 고쳐 잡고 심호흡을 한 뒤 차분한 느낌으로 전화를 받는 게 나만의 룰이었다. 내 마음이 심상치 않았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오직 K와 만날 구실을 만드는데 집중했었고 내가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을 하면 K는 쿨하게 '좋아'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가끔 채팅을 하다가 새벽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주제는 수십 가지였지만 결론은 '연애'에 관한 토론이었다. K는 새벽 4시쯤 '보고 싶다'라는 단 네 글자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내가 그 사람이 될게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주먹을 꽉 쥐며 참고 또 참았다.
"이성을 처음 봤을 때 호감을 느끼는 시간이 딱 3 초래요."
"3초 안에 사랑에 빠진다고? 말도 안 돼."
"아뇨. 상대방을 내 마음속에 담는 시간요. 일단 마음에 들어와야 감정이 생기지 않겠어요?"
"마음에 담는다는 말, 예쁘다. 너는 나를 담았어?"
"나는 그랬어요. 느낌이 좋았어요.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K는 가끔 내게 물어왔다. 언제부터 좋아하는 감정이 생겼냐고.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면 집요한 수사관처럼 꼬치꼬치 캐물었고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K에게 쉽게 풀어놓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편하고 즐겁기만 했던 데이트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담겨있던 K를 향한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K의 눈을 올곧게 바라보지 못 했던 시작점. 바로 그때부터였다.
통화를 하면 당신은 항상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가족도 친구도 모두 나를 별명으로 부르기에 처음에는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당신과의 통화에서 내 이름이 아닌 우리 둘만의 애칭이 들리는 게 서운할 정도였어요. 내 이름을 불러주던 당신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거든요.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당신을 처음 봤던 날이 기억나요. 무심한 척 캔커피를 사 왔으니 마시라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갔잖아요. 그때 당신은 의미 없이 했던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그 3초가 정말 소중했던 거 같아요. 만약 그날 당신이 내게 다가와 캔커피를 건네주지 않았다면 내 마음속에 당신이 담길 수 있었을까요?
참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슬펐던 순간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더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당신은 내게 정말 좋은 사람이었나 봐요. 아프게 했던 순간보다 설레게 했던 순간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걸 보면.
당신도 내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