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좇다

나는 너만 바라보고 있어

by 몽상가 J


"한아, 이 천은 수많은 잔물결 중 한 물결이란다. 이 물결 그대로도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이 물결들이 빚어내는 거대한 물결은 더욱 장관이지. 각각의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큰 그림을 그려내니깐.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 물결 하나가 너의 한 갈래 생각이라 치자면 다른 조금은 칙칙하고 평범한 물결 또한 거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란다. 그러니 평범한 요소들도 함부로 없애려 하지 말라고 말이다. 난 그렇게 말하고 싶구나."

- 안현서 <A씨에 관하여> 中 -



추운 겨울, 차가운 손을 맞잡고 길을 걷다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릴 때면 K는 어른처럼 나를 달래 주었다. 내가 달콤한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하면 K는 밥을 맛있게 먹으면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언제나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차피 K의 말을 들을 거면서 괜히 한번 정도 튕겨보고 싶어서 버텨보기도 했지만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에 제압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K의 깊은 눈빛에 나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나쁜 버릇 중 하나는 '두리번 거리기'였다. 친한 친구에게 지적을 받을 정도로 대화를 하다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가거나 TV 속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 시선이 분산되곤 했다.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버릇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지만 함께 있는 사람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내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K와 함께 있을 때는 서로의 얼굴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휴대폰을 보는 시간도 최소화시켰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TV로 내 시선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K는 내 시선을 따라왔고, 끈질기게 방해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돌아봐. TV도 보지 말고, 거울도 보지 말고, 나만 봐."



친구의 지적에도 고쳐지지 않았던 내 나쁜 버릇은 K의 한마디에 깨끗하게 사라졌다. 누군가를 만나면 난 더 이상 두리번 거리지 않았고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는 것,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데 얼마나 중요하고 신뢰감을 주는지 K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가끔씩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변을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K의 눈빛을 떠올렸다.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던 K의 깊은 눈은 항상 나에게 말했다.



'나는 너만 바라보고 있어.'






우리가 헤어지고 난 뒤, 내가 정말 힘들었던 건 당신의 시선 때문이었어요.


차갑기도 했고, 나를 무너뜨리기도 했고, 다가와서는 안된다고 소리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잖아요.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두려웠던 건 당신이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할 때였어요. 나를 아프게 하더라도 바라봐주길 바랐어요. 따뜻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당신의 시선이 내게 닿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 시선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있는데 나만 바라봐주던 당신의 시선이 자꾸만 길을 잃었으니까.


당신이 내게 일러준 대로,'나는 당신만 바라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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