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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상가 J Apr 11. 2021

배구 보러 왔다가 응원하고 가지요

배구는 직관을 가면 반드시 빠지게 된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지만 한점씩 바로바로 득점이 나기 때문에 선수들의 응원가가 쉬지 않고 흘러나온다. 홈팀만 스피커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어웨이팀의 응원가는 육성으로 부르거나 현장 상황에 맞는 응원을 따로 준비하는 편이다. 어웨이 경기에서는 응원가를 제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에 팬들이 악을 쓰며 응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악을 써서 응원을 했을 때 선수들이 보란 듯이 이겨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각 구단마다 응원가를 만드는 기준은 다르다.


정석대로 파이팅 넘치는 멜로디와 가사로 힘찬 응원가를 내세우는 팀이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을 예를 들 수 있는데, 처음 들으면 '뭔가 오글거리고 촌스러운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경기를 다 마칠 때쯤이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 응원가가 입에서 맴도는 걸 경험하게 된다. 대한항공의 주전 선수이자 에이스인 정지석 선수의 응원가 가사는 이렇다.


대한항공 정지석 (호)
대한항공 정지석 (호) 
승리를 (호) 
위하여 (호) 
날! 아! 올! 라! 정! 지! 석!


가사만 보면 더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팬들은 이 노래를 정말 신나게 따라 부른다. 심지어 일반 가사 부분은 일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듯 앉아서 날갯짓을 하다가 (호) 부분에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며 앉은 자리에서 점프를 한다. 글로 표현을 하자니 답답해서 동영상을 찍어 첨부하고 싶지만 최대한 참아본다. 모든 응원가에는 동작이 추가된다. 엄청나게 대단한 동작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동작을 함께해 줘야 완성이 된다. 그래서 딴짓을 하다가도 그 노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동작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유명한 노래를 선수 플레이에 맞게 개사해서 사용하거나, 서브를 넣는 순간 웅장함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상생활을 하다가 그 노래를 들으면 괜한 설렘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경우 감성을 자극하는 응원가를 만들어 화제가 됐었다. 남자팀 중에서 응원만큼은 현대가 톱이다. 특히 천안은 배구 특별시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도 하는데, 실제로 천안 유관순 체육관을 방문해보면 그 열기가 어마어마하다. 어웨이팀 선수들도 천안에서 경기를 하면 현대 팬들의 응원 열기에 놀란다고 한다. 그래서 천안을 가면 더 악을 쓰고 응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5-6년 전쯤 유관순 경기장을 찾았을 때, 갑자기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이 흘러나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딕펑스 보컬 김태현의 목소리로 '같은 심장으로'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팬들을 향한 마음을 담은 노래라고 했지만 이렇게 서정적인 응원가가 경기장 안에서 흐른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몇 번 듣다 보니 남의 팀 응원가인데 가사까지 외워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경기장에서 감성 가득한 발라드곡이 나온다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시도 자체는 새롭고 놀라웠다.


가끔 타팀의 응원가가 듣기 싫을 때도 있다. 상대팀이 실수를 하면 그걸 놀리는 듯한 느낌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서울 우리카드 위비의 홈인 장충체육관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인데, 어웨이팀 선수가 범실을 하면 B1A4의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러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좋은 날에


상대팀의 범실이 당연히 기쁜 일이지만 듣고 있는 우리는 얄미워 죽겠다. 물론 대한항공도 비슷한 곡이 있다. 세븐틴의 '아주 NICE'. 동작까지 아주 신나게 흔들어줘야 한다.


경기장에는 홈팀의 응원단장이 있는데, 응원단장의 지휘 하에 치어리더들과 함께 응원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응원석을 제외한 구역에 앉은 사람들은 열띤 응원보다는 조용히 지켜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 앉아서 경기를 보든 열정 응원을 해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다. 배구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응원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도 있기 때문에 직관을 가면 그 찬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팬들의 응원 하나하나가 모여 그 기운이 선수들에게도 전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힘을 보태기 위해 응원에 열을 올린다.


본인은 배구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즐겨보는 편인데, 야구 경기장에서도 누구보다 목청껏 응원하는 걸 좋아한다. 솔직히 야구 경기장에서는 공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그저 신나게 맥주를 마시거나, 우리 팀 차례에 일어나서 응원하는 재미로 직관을 간다. 야구 경기장과 배구 경기장을 비교하자면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경기장 사이즈부터 다르고, 입장 인원수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소리의 울림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배구 경기장은 코트와 관객석이 너무 가까워서 경기를 보다가 화가 나 욕을 하면 그 말이 그대로 선수 귀에 꽂히게 된다. 그래서 배구 경기장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욕을 심하게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 냄새가 심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가깝기 때문에 응원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 용이하다.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면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가끔씩 너무 뒤처질 때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유일하게 선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


코로나19로 지난 시즌부터 벌써 두해 동안 직관을 거의 가지 못했다. 대한항공 경기라면 홈경기는 물론이고 원정도 마다하지 않고 직관하는데 코로나19때문에 간 횟수가 거의 손에 꼽는다. 집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 있는 직관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하다. 응원가도 큰소리로 부르고 싶고,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것도 눈앞에서 보고 싶은데 이 모든 걸 할 수 없다니! 코로나19가 나아지면 경기장에 가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며 동작까지 열심히 따라 할 것이다.


경기장에서 파이팅을 외쳐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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