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하다 보면 선수들의 플레이를 조율하기 위해, 또는 상대팀의 흐름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 팀의 숨을 고르기 위해 등 다양한 이유로 작전 타임을 부르게 된다. 한 세트당 각 팀은 2번씩 작전 타임을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팀이 사용하는 2회, 상대팀이 부르는 2회, 8점과 16점에서 이루어지는 두 번의 테크니컬 타임아웃까지 합치면 세트당 총 6번의 작전 타임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 팀이 사용하는 두 번의 작전 타임 타이밍이 정말 중요한데, 상대팀에게 연속 점수를 내주는 경우에 끊어가는 의미와 전술을 논하기 위해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상대팀에서 위력적인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가 서브를 넣는 순서일 때, 작전 타임 버튼을 누를 수 있는 데드라인 시간까지 버티다가 선수의 호흡과 흐름을 방해하기 위해 얄미운 작전 타임을 구사하는 경우도 아주 많다. 배구는 흐름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방해 공작의 의미로 작전 타임을 부르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
남자부는 총 7개 팀으로 이루어져 있고, 7개 팀의 사령관으로 총지휘를 하고 계신 감독들은 작전 타임을 불렀을 때 저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진두지휘를 한다. 그중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최태웅 감독은 명언 제조기로 유명하다.
보통의 감독들은 작전 타임을 부르면 전술을 일러 주거나, 잘못한 선수를 꾸짖고, 파이팅을 넣어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작전 타임을 부르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범실 파티가 이루어지는 순간 선수들을 불러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쓴소리를 한다. 선수들은 실수를 했을 때 작전 타임 휘슬이 울리면 표정부터 어두워진다. '아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겠구나'라는 생각이 얼굴에서 읽힌다.
현대는 작전 타임이 시작되면 웜업존(코트 밖에서 몸을 풀며 대기하는 선수들이 있는 곳)에 있는 선수들까지 달려와 감독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보통은 작전 타임이 시작되면 코트 위에서 뛰던 선수들만 모여 이야기를 듣는데, 현대는 모두가 모여 작전을 듣다 보니 최태웅 감독의 청춘 드라마가 더욱 완성도 있게 느껴진다. 최태웅 감독의 명언을 몇 가지 공개해본다.
2015-2016 시즌 한국전력전
“우리 10연승 팀이야. 자부심을 가지고 해!”
2015-2016 시즌 OK저축은행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을 응원하고 있어!”
2015-2016 시즌 KB손해보험전
“못하는 것과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다르다. 오늘은 너희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6-2017 시즌 챔피언 결정전
(문성민 선수에게) "너는 문시호 아빠다."
2018-2019 시즌 한국전력전
"승원아, 계속 2인자로 남을래? 2인자 될래?"
2020-2021 시즌 한국전력전
"영석이 형은 우리나라 넘버 원! 너는 드래프트 1순위!"
"앞으로 너희들의 시대가 올 거야! 걱정하지 마! 부담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거야. 괜찮아, 막 부딪쳐! 알겠어?"
2020-2021 시즌 KB손해보험전
"안된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하되, 이런 식으로 지면... 화가 나야 돼! 열이 받아야 돼!"
2020-2021 한국전력전
"허수봉! 상무 다시 갈래?"
2020-2021 우리카드전
"수봉아, 너의 최고 장점이 뭔지 알아? 너는 싱글벙글 뛰어다니는 거야. 가서 신나게 뛰어다니라고!"
2020-2021 한국전력전
"계속 두드려야 돼. 계속 두드리면 열려. 걱정하지 말고 해. 범실 중요한 게 아니야. 두드려 계속!"
2020- 2021 OK저축은행전
"이렇게 져보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너희 그거 알아? 너희들도 모르게 지금 정말 많이 성장했어."
직관을 하면 작전 타임 내용을 들을 수 없다. TV 중계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데 현대가 작전 타임을 불렀다고 하면 이번에는 최태웅 감독이 어떤 명언을 남겼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모 해설가는 '시즌이 끝나면 최태웅 감독이 책 한 권을 출판해도 될 것 같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모 기자가 최태웅 감독에게 작전 타임 때 명언을 남기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게 말 한마디를 통해 자극을 주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배구라는 게 분위기를 많이 타는 스포츠라 감독이 그런 일까지 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자극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임팩트 있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작전 타임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감독들이 정말 화가 나면 침묵으로 일관한다. 선수들은 감독의 눈치를 보기 바쁘고, 감독은 선수들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다.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중계를 통해 그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 역시 가슴이 졸여지기는 마찬가지다.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고희진 감독이 이번 시즌 침묵으로 선수들을 지켜보던 순간이 있었다. 한 선수가 적막을 깨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자 조용히 하라고 막아섰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불편했던 순간.
감독들이 작전 타임 때 세게 말을 하거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선수들의 의지를 불태우기 위함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당근과 채찍이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쓴소리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신을 번쩍 깨우는 감독의 한마디가 의외로 효과가 있음이 경기 결과를 통해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