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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뻐 보일 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대담해지기 위해

by 몽상가 J
지금의 나는 그의 선택을 바라고, 기대하고, 기다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짝사랑이 아픈 건 사랑을 준 만큼 되돌려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능동적이었던 나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내 머리와 수동적으로 변해 버린 내 마음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팽팽한 긴장감이 내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中 -



K와 나는 술을 한잔 하면서 저녁 먹는 걸 즐겨했다. 둘 다 술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시기 시작하면 기분 좋게 한잔 두 잔 끊임없이 술잔을 비워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취기가 올라 평소에는 하지 못 했던 애교를 부린다든지 애정표현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패턴이었다. 평소에도 K보다는 내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애정표현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었지만, 술이 들어가면 나는 더욱 수다스러워지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심지어는 내 친구들의 연애사까지 끄집어내며 잠깐의 침묵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 집에 갈래?


만취까지는 아니었지만 거나하게 취해 두서없는 이야기에 빠져있는 나를 바라보던 K의 제안이었다. 가끔씩 밤을 함께 보내는 사이였지만 부모님과 사는 나를 웬만하면 귀가시키려는 K의 노력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나 싶어 멀뚱히 K의 눈을 바라봤다. 내 눈빛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K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너는 취해서 재잘거릴 때가 제일 예쁘거든.”

“응? 지금 나 말 많다고 흉보는 거죠?”

"너 지금, 진짜 사랑스러워."


이미 술기운 때문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었겠지만 혹여나 K의 말을 듣고 얼굴빛이 더 빨갛게 달아올랐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볼에 가져다 댔다. K는 내가 부끄러워한다는 걸 눈치채고 자신의 넥워머를 씌워주며 추워서 그러는 거냐고 진심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질문을 했다. 술의 힘을 빌린다는 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우리는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대담해지기 위해 그렇게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마시고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K였기에 내가 회식을 한다고 하면 걱정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적당히 마셔. 취하면 안 돼."

"걱정 마요. 주는 대로 다 받아 마시지 않을게요."


그러나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K의 전화를 받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술에 취했지만 무사히 귀가 중임을 어필하기 위해 전화를 걸면 K는 어김없이 한숨을 쉬며 더욱 단단히 다짐을 받아내곤 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취하면 안 돼! 약속했다, 너!"








당신은 내가 수다스러울 때가 가장 예쁘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대체 취한 사람이 두서없는 이야기를 내뱉는 게 뭐가 그리 매력적이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신은 내가 평소에는 하지 못 했던 가슴속 이야기를 꺼내 보이는 걸 좋아했던 거 같아요. 항상 나에게 '넌 비밀이 너무 많아.'라고 서운해했으니까.


나는 술잔이 기울어질 때마다 당신의 고개가 살며시 넘어가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나면 당신은 예쁜 손가락으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으니까.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거든요. 가끔은 궁금해요. 당신은 아직도 예쁜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길지. 만약 우리가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하게 된다면 그동안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얘기할 거예요. 당신이 가장 예쁘다고 했던 그때처럼, 수다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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