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랑했던 사람 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 이석원 <실내인간> 中 -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말, 외적인 부분일 수도 있지만 성격이나 취향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 철모르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눈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눈이 내리면 우산을 써야 하고, 거리가 미끄러워지며, 시간이 지나면 거리를 더럽게 만든다. 심지어 눈이 얼기라도 하면 빙판 길을 걸어 다니는 건 정말 최악이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꽈당-하고 넘어지는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추하니까.
"눈 온다!"
K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주 바쁜 순간에도, 사소한 말다툼으로 냉전기를 보내는 순간에도, 감기 몸살로 온몸에 열이 나는 순간에도 세상에서 가장 신이 난 목소리로 눈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K의 모습은 흡사 1년 내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같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눈이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를 향해 K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쁨을 전달했다.
"눈이 그렇게 좋아요?"
"좋아. 난 눈이 오는 게 정말 좋아."
"나보다 더?"
"비교할 걸 비교하세요."
"대답 회피한 거죠 지금! 나보다 눈이 더 좋다는 거죠!?"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K의 번호를 찾았다.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지금 내리는 눈을 보고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매번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 했다. 그리고 눈이 내리면 미끄러운 길을 걸으며 투덜거리기 바빴던 나는 더 이상 눈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K가 좋아하던 모습과 함께 내리는 눈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한참을 멍하게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 눈을 보며 기뻐하고 있을 K를 생각했다.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눈이 내릴 때마다 당신을 떠올리는 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요. 지금도 당신은 눈이 내리면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문자를 보내겠죠. 언제나 눈이 온다는 단 한마디를 보내왔지만 얼마나 기쁜지 그 기운은 충분히 전달되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