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이별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호칭이 소멸되는 일인 것 같아요" 하고 답하겠다. 서로의 입술에서 서로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우린 누군가와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덧없이,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中
누군가를 잊기 위해서는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힐 거라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K를 잊기 위해 온전히 얼마만큼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몇 명의 사람을 만나왔을까.
나는 이 공간 속에서 K와의 추억을 써 내려갈 때마다 수많은 감정을 받아내야 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K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일 때면 그때의 우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 순간의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질 때도 있었고, 그리움에 복받쳐 울기도 했으며, 아릿한 기억이 자꾸만 흘러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K가 주었던 아픔보다 그에게 받았던 사랑이 더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아주 가끔 K와 연락을 한다. 몇 번의 만남도 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오랜 친구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K의 차를 타고 멀리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서로의 생일에는 함께 축하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관계가 과거의 연인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내 마음이 여전히 그를 향해 있다는 사실은 절대 꺼내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나의 섣부른 판단이 우리의 관계를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까 봐, K가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건 원치 않으니까. 나는 이대로도 충분히 좋으니까.
더 이상 K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와의 추억을 덮는다.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도 불현듯 K의 눈빛이, 목소리가, 길고 매끄러웠던 손가락이 떠오를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 그와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서로의 입술에서 서로의 이름을 지워가듯, 이제는 내가 그의 이름을 지워가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당신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가던 길을 멈춰 서요. 어떤 말을 전할까,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도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여전한 걸 보면 나는 아직 멀었나 봐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모든 걸 지워보려고요. 물론 당신을 온전히 잊을 자신은 없어요. 그저 내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겠죠. 눈치 빠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예요. 헤어진 후에도 내 마음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걸. 그래도 나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지금의 우리가 그때의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