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변함없을 내 꿈은 낭만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계절마다 시집 한 권을 사고, 낙엽 한 장으로 시간을 가두어두던, 정갈한 글씨로 '가을을 느끼며..'라고 읊조리던 낭만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아빠는 시를 읽지 않았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이따금 낭만의 찌꺼기 정도를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불만이었다. 남자 갱년기는 요리를 하는 식으로 발현되거나, 드라마를 보는 식으로 발현되는데, 하필 아빠는 드라마로 갱년기가 찾아와버렸다는 것이다.
엄마의 심기를 거스를까 별 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아빠에게 낭만은 무엇일까.
평생 가족 하나를 바라보고 살아온 아빠에게 남은 낭만은 무엇일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만, 그 마저도 나의 미래 정도의 답으로 되돌아올까 하는 불안에 접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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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잃는다는 건 철이 든다는 의미일까.
철 든 로멘티스트라는 이상은 모순 형용에 불가할까.
그런거라면, 정녕 이치가 그러하다면 철들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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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철 들어버린 당신은
당신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당신에겐 낭만따위 사치인건가요, 혹은 당신의 낭만을 나는 보지 못하는 것 뿐인가요.
당신은 나의 낭만에 현실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낭만을 꿈꾸며 일어났고, 낭만 가득한 공간에서 글을 썼고, 낭만을 노래하며 잠들 겁니다.
당신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철들지 않은 제겐 너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