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영 Jul 17. 2021

미역국은 사랑이야.


나는 옛날부터 아무것도 넣지 않은 미역국을 참 좋아했다.

소고기 미역국도, 조개를 넣은 미역국도 다 싫어했다.

아무런 재료 없이 오로지 미역만을 가지고 맛있는 국물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그렇기 떄문에 우리 엄마는 내 생일만 되면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 사골 우려내 듯 미역국을 끓이고 또 끓였다.

그 어디에서도 엄마 미역국보다 맛있는 미역국을 맛보지 못한 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엄마는 늘 말했다. 생일에 남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 번 먹는 게 소원이라고.

아빠랑 나는 자존심이 센 편이다.

남이 원하는 사랑보다는 내 방식의 사랑을 남이 받아주길 강요한다.

엄마 생일엔 매번 그래왔었다. 용돈을 모아 선물을 사고, 정성보다는 돈으로 때우려고 했다.

엄마는 '와 , 예쁘네' 하는 짧은 감탄을 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나도 사골국 끓이듯 미역국을 끓였다.

엄마에게는 오후 늦게 시험이 있어 내려가면 9시가 될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한 채로,

새벽 6시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해 하루종일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만들었다.



엄마는 46년 인생 중 오늘이 가장 행복한 하루라고 말했다.

이게 뭐라고. 별로 웃기지 않는 드라마 대사에도 유독 크게 반응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에 대문짝 만하게 내 자랑을 하고

들뜬 목소리로 외할머니께 전화도 드렸다.



내가 준 선물에도 유독 크게 반응했다.

선물을 사려고 왕복 3시간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는 말에,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도 너무 좋다며 이리저리 걸쳐보고 사진을 찍어달라하는 그 모습에

사랑이라는 건 참 별 게 아니구나 라는 .



소고기도, 조개도, 다른 재료 하나 없이 미역국을 끓인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내 10시간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그 깊은 맛.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임상춘 작가는 욕심쟁이임에 틀림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